정기훈 기자

"기사 마감이 늦어지면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것 같아요. 피가 말라서 매일노동뉴스를 패대기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독자를 위해 마감 좀 '빨리' 합시다."

매일노동뉴스를 제작하는 인쇄노동자 이승한(41·사진)씨는 인터뷰 내내 '빨리' 라는 단어를 수십 번 반복했다. 제작이 늦어지면 속칭 '인쇄빨'을 확인하기 힘든 데다, 배달사고까지 발생해 품질과 신뢰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쇄빨은 제작물의 선명도와 배열 맞춤 등 인쇄품질을 의미한다.

이씨는 지난 24일 밤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한양인쇄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앞으로는 행복하게 매일노동뉴스를 제작하고 싶다"며 "약속한 마감시간인 저녁 7시30분을 지켜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양인쇄는 2005년부터 매일노동뉴스를 제작하고 있다. 인쇄소는 편집국이 넘긴 기사파일을 필름으로 전환해 인쇄·제본 과정을 거쳐 매일노동뉴스를 찍어 낸다. 매일 밤 제본한 책자를 수작업으로 봉투에 일일이 담아 지역별로 분류한다. 이어 한겨레신문이 있는 마포구 공덕동에 밤 9시10분까지 배달해야 한다. 매일노동뉴스는 한겨레신문의 배달망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 인쇄소와 매일노동뉴스가 계약한 마감시간은 오후 5시였다. 그런데 해마다 마감시간이 뒤로 밀리더니 지금은 저녁 8시30분에 파일이 넘어오기도 한단다. 이씨는 "마감시간을 늦춰서라도 기사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 못지않게 매일 아침 독자들이 제때 신문을 받아 보게 하는 것도 일간지 기자로서 지켜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기사 마감이 늦어지면서 이씨의 출근시간도 오후 6시에서 7시로 늦춰졌다. 매일노동뉴스 제작을 마치고 난 뒤에야 증권가 정보지 등 10여개의 다른 인쇄물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은 새벽 5시부터 7시 사이다. 그는 낮과 밤이 바뀐 채 15년을 인쇄노동자로 살았다.

이씨는 "인간관계 단절과 수면장애 등 부작용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새벽에 일이 끝나다 보니 동료들과 술 한잔 나눌 여유조차 갖기 힘들다. 그래도 이씨는 "일이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많은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제불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감사하다"며 "제가 만든 책이나 정보지 등을 사람들이 보거나 서점에 배포될 때 인쇄노동자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나 "매일노동뉴스가 보람과 기쁨을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달사고로 잠자는 도중에 항의전화에 시달리는가 하면 가끔은 인쇄빨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기사 마감이 늦어지면 전 직원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가운데 일을 하게 돼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인쇄가 흐려지는 등 사고가 발생한다"며 "시간이 촉박해 사고나 실수를 만회할 기회조차 없어 속만 타들어 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매일노동뉴스 때문에 매일 주름이 늘어나고 있다"며 "연애할 시간이 없어 결혼을 못하는 데에는 매일노동뉴스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간혹 기사 마감이 빨리 끝나 여유가 생기는 날에는 매일노동뉴스를 읽기도 한다. 그는 "뉴스를 통해 노동자로서 알고 있어야 할 권리나 유용한 정보를 얻는다"면서도 "매일노동뉴스는 계약한 마감시간을 지켜 인쇄노동자의 노동권을 존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이씨는 "일요일 하루라도 마감시간을 앞당겨 달라"고 강조했다. 일요일에는 다른 인쇄물의 내용과 분량이 늘어나 제작시간이 배로 들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노동뉴스가 20년을 견뎌 온 것처럼 앞으로도 보란 듯이 20년간 더 지속되기를 바란다"며 "자부심을 갖고 매일노동뉴스를 좋은 품질로 제작할 수 있도록 기자들도 책임감을 갖고 마감시간을 지켜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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