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부일장학회 설립자 김지태씨의 유족과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신문은 다음날 23일자 지면에 김씨의 부인 송혜영씨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실었다.

정수장학회 공대위 기자회견을 왜 민주노총에서 했을까. 비밀은 경향신문 건물인 ‘정동빌딩’에 있다. 지금은 택시기사들에게 경향신문에 가자고 하면 잘 모른다. 대신 맞은편 강북삼성병원은 잘들 안다. 그만큼 경향신문의 위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건물이 있는 정동빌딩은 한국 현대사를 한 몸에 증언한다. 65년 박정희 쿠데타 정권은 김지태씨가 설립허가를 받은 서울MBC를 빼앗아 방송국을 개국했다. 갖은 고생 끝에 방송국을 개국하자마자 정부가 문화방송의 사주 김지태를 구속하고, 경영권을 5·16 장학회로 바꾸는 황당한 일을 벌인 것이다. 이에 실망한 공신들이 의리론을 제기하며 미련 없이 MBC를 퇴사하기도 했다.

MBC가 재벌 삼성의 후원을 받는 TBC와 맞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라디오방송에서는 선발효과로 우위를 지켰지만 텔레비전은 TBC보다 5년이나 출발이 뒤져 따라잡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했다. MBC와 TBC의 치열한 경쟁은 우리나라 방송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이렇게 출발한 MBC는 65년 당시 한국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에게 방송국 건물 설계를 맡겼다. 김수근은 60년 29살의 대학원생으로 당시 국회의사당 건축현상설계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됐던 영재였다.

김수근의 손으로 만든 정동빌딩은 이렇게 67년 12월 탄생했다. 정부는 당시 김수근에게 ‘동양 최고의 방송국을 지어라’고 주문했단다. 모든 창문을 사각형이 아니라 모서리가 둥근 TV 브라운관 모양을 만든 김수근의 손맛은 아직도 살아 있다. 밖에서 정동빌딩을 보면 마치 TV 수신기 수십 개를 층층이 쌓아 올린 모양새다.

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까지 경향신문과 MBC는 하나의 회사였다. 이름하여 (주)경향신문문화방송이었다. 전두환 권력은 한 회사가 신문사와 방송사를 겸영하는 것을 금지하고 지역신문의 경우 1도 1사를 원칙으로 말도 안 되는 언론통폐합을 단행했다.

지금 이 건물의 소유주는 경향신문이지만, 과거의 인연으로 MBC의 소유주인 정수장학회는 이렇게 정동빌딩 11층에 자리 잡았다.

강북의 삼선교와 영등포 시대를 마감한 민주노총이 2010년 이 건물 13~15층에 세 들어 왔다. 민주노총은 13층 대회의실을 기자회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대위가 멀리가지 않고 정수장학회로부터 딱 두 층 위의 민주노총 기자회견장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13층에는 민주노총 전국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가 있다. 지난해 희망버스 때문에 수배됐던 송경동 시인이 몸을 의탁했던 장소도 13층의 바로 이 방이다. 역시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부산일보로부터 편집국장 직위를 뺏기고 해고까지 당한 이정호 편집국장이 1인 시위를 벌였던 장소도 바로 이 건물 1층이었다.

11층 정수장학회와 13층 민주노총 회견장 사이 12층에는 민예총이 세 들어 있었다. 지난해 민예총 사무총장을 지냈던 인물은 문재인 대선캠프로 갔고, 올해 사무총장은 지난 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서울 중구 경선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1·12·13층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공존한다. 군사정권을 경험한 한국 현대사의 굴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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