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
대학원 교수

문재인·안철수 후보 사이의 단일화 논쟁에 이어 정치쇄신 논쟁이 벌어지면서 시민사회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그 비판의 무게가 안철수 후보 쪽을 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것은 정치쇄신으로 내놓은 제안 가운데 국회의원 수 줄이기가 문제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안철수 후보가 제안한 핵심이 수 줄이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 포기 수순을 밟아야만 정치의 비효율성을 제거함과 동시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요건이 성립할 것이라고 봐서 이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나 안철수 캠프의 의도와는 달리 설명력 부족이거나 아니면 문제제기 내용 자체의 결함이거나 좌우지간 현실적 반응은 부정적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됐던 것은 이러한 반응에 대해 안철수 후보 쪽이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몰아쳤다는 점이다. 그런 요소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안철수 후보의 제안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모두가 기득권 세력으로서 자기 특권 지키기를 내세워 논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이러한 점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면, 사실 걱정이 된다.

제안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을 그런 각도에서만 파악한다는 것은 자신과 다른 견해에 대해 충실하게 경청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상대의 논리에 대해 충분히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에만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수평적 대화나 네트워크를 주장하고 있는 안 후보의 평소 소신이나 자세와도 맞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정치의 정상작동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나 조처에 대해 여러 제안을 할 수 있다. 또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는 문제제기나 토론의 주제를 잡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답을 마련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문제제기로 멈춰 있다면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론에 걸리게 돼 있다.

최근 공방의 대상으로 돼 있는 정치쇄신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는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그것은 어떤 내용을 가진 국가모델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기초적 전제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의 포기나 기타 여러 가지 방안의 정치쇄신은 그 어떤 국가적 모델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 필요한 과정적 절차이자 조건이다. 그런데 바로 이 목표나 궁극적 모델 자체가 제시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저러한 국가 모델을 만드는 데 있어 필요한 작업은 바로 이러저러한 것이다”라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게 없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지고 비판적 이해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안철수 후보의 정치쇄신 제안에 대한 비판적 반응은 기득권의 반발보다 안철수 후보의 설명부족이나 목표제시가 결여됐다는 점이 보다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이에 대한 성찰보다는 이해부족이나 기득권 집착으로 상대방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단 자신이 정하면 그게 옳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는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논법은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정치쇄신 제안의 내용을 따지기 이전에 이러한 태도가 보이는 것은 안철수 후보에 대한 신뢰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제안 내용도 사실상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의원 수의 조정이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효율성과 강화가 과제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삼권분립의 차원에서 봐도, 의회기능의 약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제안은 정치쇄신이 아니라 행정부 독주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도 있는 만큼 보다 신중한 방식의 논의가 필요하다.

자칫 이러한 방식의 제안과 그 내용이 “안철수는 정치적으로 역시 미숙하다”는 소리를 듣는 기반이 된다면 본인으로서도 억울하지 않겠는가.

정치쇄신을 넘어 정작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국가의 모델과 기능·목표다. 이걸 이뤄 내기 위해 필요한 정치의 변화는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로 논리가 전개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번 의원 수 줄이기 제안만큼 안철수 후보가 우군에게서조차 비판에 직면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러한 사안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신중함과 면밀함 그리고 내용적 무게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어떻게 보면 이로써 안철수 후보는 정치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정치의 철폐가 아니라 성숙을 바란다면 그 정치의 성숙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방식도 그에 맞는 스타일과 어법, 그리고 내용이 분명 따로 있을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이번의 경험을 뼈저리게 느꼈으면 좋겠다.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globaliz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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