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지난 4·11 총선에서도 투표시간 연장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아예 주요 공직선거일을 법정공휴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대선을 앞두고서는 각 대선 예비후보자들 간 핵심쟁점으로까지 부상했다. 투표시간이 노동자들에게 갖는 의미와 연장의 필요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정리했다.

할 수만 있다면 투표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데는 법 논리상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투표권은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투표는 그 자체가 국가를 구성하는 행위다. 시민이 국가에 권한과 책무를 부여하는 기본제도인 것이다. 이런 이론적 기초에서 본다면 투표권은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천부적 기본권이라 할 것이다. 비교하건대 상대적으로 국가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어져 있는 시혜적 기본권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투표권을 바라보는 일부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밤새 개표를 지켜보는 사회적인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투표는 시간이 아니라 성의의 문제”라는 발언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쏟아 내고 있다. 국가를 책임지고 있다면 적어도 헌법이 정하고 있는 투표권의 가치에 대한 이해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소한 시간과 비용을 어찌 투표권 제한의 이유로 삼을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한편에서는 투표시간 연장과 선거 유·불리의 관계를 따져보는 듯하다. 양자는 전혀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다는 게 중론이기도 하거니와 헌법정신에 비춰 볼 때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주권자의 정당한 기본권 행사가 일부 정치집단의 이해관계에 막힌다면 이런 행태가 바로 투표시간 연장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투표시간 연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대통령선거를 위한 임시적인 대안일 뿐이다. 조속한 시일에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개정 내용은 선거일을 공휴일로 정하자는 말이다. 참고로 국회의원선거일이나 대통령선거일은 법정휴일이 아니다. 지금껏 당연히 휴일로 알고 투표시간 연장문제 제기가 필요 없다는 오해가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휴일이란 근로기준법상 주휴일과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에서 정한 5·1 노동절이 유일하다.

이에 대해 휴일이 많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선거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매년 선거가 있는데 사실상 휴일이 하루씩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휴일이 많은데 기업부담이 너무 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어떤가. 투표권의 본래적 성격을 재론하지 않더라도 지도자와 대표자를 뽑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세삼 강조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4∼5년 마다 찾아오는 선거일 만큼 국가를 위해 중요한 사업이 있을 수 있을까.

투표율을 높이는 일은 대표자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최근까지 각종 선거에서 뽑힌 지도자들은 지역과 중앙을 가릴 것 없이 유권자 절반 중의 절반 정도만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그들만의 대표자이지 전체 유권자들의 대표는 아니라는 비난의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낮은 투표율 때문이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다. 따져 보면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는 대표자들의 통치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뽑지 않은 대표자가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펼칠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지난 기간 갈수록 노동자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져 왔다. 노동자들에게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 참여할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그 어떤 명분으로 노동정책을 집행할 수 있겠는가. 기회보장은 국가가 생겨난 출발이자 최소한이다.

사회 각계에서 투표시간을 연장하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투표시간 연장에 찬성하는 여론이 절반이 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현행 투표시간(6시부터 18시까지)의 위헌여부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선거일 전 신속한 결정을 기대한다. 헌법재판소는 분명 투표권의 가치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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