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오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검사의 구형이 끝났다. 5명 피고인들의 이름을 다 외우기는 어려웠던 듯, 앉은 채로 종이에 적은 것을 읽었다. 건조한 전원 실형 구형이었다. 변호인은 일어나 “시간과 속도에 관한 생각의 차이”가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다소 관념적인 변론을 마쳤다.

피고인 A가 일어났다. 아니 피고인 최후진술에서 그는 응당 일어나야 했으나,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형사법정의 방청석과 증인석 사이의 공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변호인의 관념을 구체적으로 설명이라도 하듯이 “제가 오늘 2시인 재판을, 서울서 오면서 40분을 늦은 점, 재판장님께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과 제가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의 차이가 있다는 점만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 차이를 알아 주지 않는 사회에 저는 장애인 이동권이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알리다가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했다.

피고인 B는 울었다. 그녀 역시 마땅히 일어나서 울어야 했으나, 그러질 못했다. 법정 앞에서 최후진술을 하게 되면 짧게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도저히 “선처”라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변호인으로부터 긴 설명을 듣고 “현명한 판단을 구하기로 했던” 그녀였는데, “억울합니다”라는 말로 진술을 시작했다.

피고인 C 역시 재판장에게 목례로써 진술의 시작을 알렸을 뿐, 서지 못했다. 그는 증인들의 증언이 왜 틀렸는지, 자신들이 왜 유명 정치인인 도지사를 만나고자 했는지, 그 도지사가 장애인들의 이동수단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는 것을 설명했고, 자신들은 그렇게 무식한 자들이 아니며 또 무례한 자가 아니라고, 시종 차분한 어조로 항의했다.

변호인의 옆에 앉아 있던 피고인 D는 일어났다. 검찰에서 “왜 장애인도 아닌 사람이 장애인들과 함께 시위를 하고 다니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최후진술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를, 재판의 시작을 기다리던 변호인에게 물어 봤던 사람이었다. 그때 변호인은 그 답도 들었으나, 내심 그 이야기를 할까 걱정됐다. 진심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과 속도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이 통해서일까, 날카로운 목소리였으나 불편한 진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피고인 E가 일어섰으나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떤 몸짓에 돌입했고, 그 앞에 있던 그 몸짓을 이해하는 여성이 이를 “통역”했다. “재판장님… 저는 휠체어… 장애인이 아닙니다… 저는 청각 장애인… 이지만…. 저는 어디든지… 제가 원하는 곳… 을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라면… 자살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법정에 있던 누구도 수화자 남성의 원래 목소리를 알지 못했지만, 모두는 발화자 여성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화는 이렇게 끝났다.

“휠체어 장애인… 들과… 함께하려다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재판장님이 휠체어…. 장애인… 이시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서…. 현명한 판단… 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과 속도의 차이에 대한 생각의 차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장애인 이동권 실현을 목적으로, 구체적으로 저상버스와 소위 장애인콜택시라 불리는 특별교통수단의 확충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한다. 그러나 집회 행진속도는 휠체어를 타지 않는 사람들과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경찰은 고의로 지나치게 느린 속도로 행진한다며 교통방해 혐의를 둔다. 또 휠체어 장애인들이 시내 버스타기 행사를 한다. 저상버스가 아닌 관계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역시 집단적으로 버스를 타려고 했다는 것에서, 버스회사의 업무를 방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둔다. 이런 혐의가 근본적으로는 시간과 속도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수사기관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일까.

사건의 변호인은 주섬주섬 서류뭉치를 챙겨 법정을 벗어나고 있었다. 눈시울은 뜨거웠고 마음은 무거웠으며 머릿속에는 어떤 질문이 맴돌았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여러 명이 함께 시내버스를 타더라도, 그래서 좀 더디 가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세상은 불가능할까. 어느 도시에 저상버스가 몇 대 있는지, 장애인콜택시를 타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그런 것도 잘 모르면서 40분을 뚱하게 기다렸던 사람이 계속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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