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최병승 동지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천의봉 사무장이 2012년 10월17일 오후 9시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쪽에 위치한 송전철탑 15미터와 20미터 지점에 밧줄로 몸을 묶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두 동지는 ‘불법파견 인정, 신규채용 중단, 정몽구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8일 발표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성명서다. 그들은 올라갔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투쟁을 위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그곳에 올라갔다. 송전철탑에 밧줄로 제몸을 묶고 좁은 나무판때기에 겨우 걸터앉아 악을 써대며 버티고 있다. 철탑이 그가 일해야 할 공장도 아니고 크레인이 그가 쉬어야 할 집도 아닌데 노동자는 오르고 있다. 그마저도 안 되면 포크레인이라도 올라가야 했다. 그곳에서야 노동자는 맘껏 주장을 외칠 수 있었다. 그곳에서야 노동자는 동지를 부르고 세상을 부를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서야 노동자는 그곳에서 자유일 수 있었다. 그러니 그곳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서 오르는 투쟁의 소도가 됐다. 그곳에 현대차비정규직의 그들이 있다. 최병승. 천의봉. 대법원에서 그의 사용자는 현대차라고 판결받은 자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인 자. 둘이지만 하나의 운명, 노동자로 송전철탑에 올라가 있다.

2. 그들은 외치고 있다. 불법파견 인정하라. 신규채용 중단하라. 파견법을 위반한 사용자 현대자동차 자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송전철탑에서 노동자는 사용자를 상대로 요구하고 그걸 쟁취하겠다고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 홀로 높은 철탑에 올라가서 외쳐대는 것이 노동자투쟁이 된 것일까.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는 혼자서 요구해서 투쟁하지 말고 함께 하라고 권리선언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그것이 노동자의 기본권이라고 명시했다. 노동조합 만들어서 교섭하고 파업 등 투쟁하라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 그러면 노동자권리를 요구해서 함께 투쟁해야지 어쩌자고 최병승·천의봉은 철탑에 오른 것일까. 1931년 5월29일 평양 평원고무공장노조의 강주룡은 을밀대 지붕에 올라갔다. 49명의 파업단이 임금삭감에 항의하며 투쟁했지만 해고되고 공장에서 쫓겨났다. 그리고서 죽음을 각오하고 그곳에 올라가서 강주룡은 세상에 외쳤다. “임금삭감 철회하라.” 우리 노동운동사의 고공농성투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노조로 함께 투쟁했지만 승리할 수 없어서 올라야 했던 곳이 강주룡의 을밀대 지붕이었다. 그리고 80년이 흐른 지금 그곳은 크레인·철탑이 됐다. 그러니 뭔가.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자투쟁은 노조로는 승리하지 못해서 노동자 최병승·천의봉이 송전철탑에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주룡이야 49명 파업단의 투쟁이었으니 어찌해 볼 수 없었다지만 최병승·천의봉은 다르다. 그들은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다. 15만명 금속노조의 조합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 송전철탑에 올라가서 불법파견 인정과 신규채용 중단을 외치고 있다.

3.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라고, 노동조합으로 교섭하고 투쟁하라고 그것이 법이라고 선언하고, 그것이 노동자의 기본권이라고 보장했으면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운동은 오랜 기간 그걸 노동자권리로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5만의 금속노조도 승리하지 못해서 비정규 노동자는 송전철탑에 올라가 있다. 어디 현대차비정규 노동자뿐인가. 금속노조의 수많은 사업장에서 투쟁은 분명히 그들 조합원의 투쟁이었다. 해당 사업장지부·지회 또는 분회의 투쟁이었다. 그들에게 금속노조는 그저 연대와 지원의 단위였다. 이 나라에서 산별노조는 산별연맹보다 더 연대와 지원이 행해지는 노조일 뿐이었다. 함께 교섭하고 투쟁하라고 하나의 노동조합, 금속노조로, 하나의 산별노조로 조직했던 것인데 노동조합은 하나인데 교섭과 투쟁은 함께 하고 있지 않다. 금속노조가 아니라도 정도만 다를 뿐 다른 산별노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은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사용자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규약은 지부·지회가 아닌 노동조합(위원장)이 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그러니 법대로, 규약대로 하면 그만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용자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의 체결은 실제로는 지부·지회 등 사업장 조직의 일이다. 조합원의 권리에 관한 단체협약 체결에서 산별노조는 교섭권을 위임해 주고서 단체협약서에 서명날인하는 게 고작이다. 산별협약을 체결하기도 하지만 조합원들은 그보다는 자신의 권리를 직접 챙겨 주는 사업장협약에 관심을 갖는다. 지금 산별노조에서 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에 관한 규약은 규약대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산별노조는 산별협약 하나를 겨우 붙잡고 있을 뿐 조합원권리에 정작 중요한 사업장협약은 지부·지회 등 사업장조직의 일이라고 맡겨 버렸다. 산별협약에는 현대차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한진중공업조합원의 정리해고문제도 없다. 그건 사업장협약에서 정할 사항이라고 오로지 지부·지회 등 사업장조직에서 요구해서 교섭하고 투쟁해야 하는 일이었다. 산별교섭을 할 수 있어야 조합원권리를 산별노조가 교섭하고 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별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면서 이미 조합원 권리를 위한 교섭과 협약 체결권은 산별노조에 있는 거라고 규약에서 정했다. 그리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도 그렇게 정하고 있다(제29조 제1항). 그러니 사용자들이 응해주지 않아서 산별교섭 틀이 마련되지 않았다 해도 산별노조는 당연히 조합원 권리를 위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교섭하고 투쟁해야 했다. 산별교섭 틀은 산별노조와 사용자들이 그런 교섭의 비용과 수고를 덜기 위해 고안한 교섭방식일 뿐이다. 조합원 권리 확보를 위해 교대제 변경이 필요하다면 이를 산별노조는 사용자들에게 요구해서 교섭하고 투쟁하면 된다. 모든 사용자들과 일제히 교섭한다는 게 수고스럽다면 그 사용자를 상대로 해서 협약을 체결하면 다른 사용자들도 쫓아서 할 사용자를 택해서 산별노조가 교섭하고 투쟁하면 된다. 그렇게 하라고 금속노조 규약은 “단체교섭권은 조합에 있으며, 조합 내 모든 단체 교섭의 대표자는 위원장이 된다”고 규정하고(제66조 제1항), 이 나라 산별노조들은 모두 이와 같은 규약을 두고 있다. 현대차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문제라면 마땅히 금속노조는 현대차비정규직 조합원을 위해 현대차를 상대로 요구해서 교섭하고 투쟁하면 된다. 나아가 현대차뿐만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고 있는 사업장 사용자들을 상대로 요구해서 교섭하고 투쟁하고, 더 나아가 정규직·비정규직을 구별하지 않고서 하나의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해서 교섭하고 투쟁할 수도 있다. 이렇게 규약대로 하면 현대차비정규직은 현대차비정규직지회만의 교섭과 투쟁이 아니라 금속노조의 교섭과 투쟁이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요구해서 교섭하고 투쟁할 것인지는 금속노조가 면밀히 검토해서 택해서 전개해 나가면 된다. 우리 산별노조는 규약대로 하나의 노조로서 교섭하고 투쟁하겠다고 조합원들의 결의로 기업별노조에서 조직변경한 것이다. 그러면 규약대로 운영되고 활동해야 산별노조인 것이고 규약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지부·지회 등 사업장조직이 조합원 권리를 위한 교섭과 투쟁을 한다면 아직 산별노조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규약위반이고, 산별노조로 전환시킨 조합원의 결의에 반하는 것이다.

4. 지금 산별노조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산별노조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말해 왔다. 지금까지 이 나라 노조운동에서 문제된 것들을 해결해 줄 거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산별노조는 노동자를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조직해서 교섭하고 투쟁하게 하는 노동조합의 하나일 뿐이다. 하나로 교섭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노동조합이라 해도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자투쟁과 관련해서 수많은 문제들은 산별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현대차비정규직투쟁도 그 하나다. 산별노조 사업장들에서 직장폐쇄와 용역투입으로 노조가 파괴되고 있다.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조직변경이 조합원의 결단이라면 그 산별노조를 규약대로 운영하는 것은 산별노조(집행부)의 일이다. 조합원이 송전철탑에 올라가 사용자를 상대로 정규직 전환이라는 조합원 권리를 요구해서 투쟁해야 하는 것은 금속노조 15만명이 함께 교섭하고 투쟁하지 못하지 못해서다. 그러니 현대차 명촌중문앞 송전철탑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최병승·천의봉에게는 조합원 권리를 위해서 올라가야 할 투쟁의 소도였을지 몰라도 금속노조에겐 투쟁의 소도일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 이 나라 산별노조는 그곳에 오르고 있는 것 아닐까. 산별노조가 결코 오를 수 없고 올라서도 안 되는 기업별노사의 교섭과 투쟁의 철탑에 오르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철탑을 바라보고 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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