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원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나래)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지만 건장해 보이는 3명의 늙은 노동자들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올해 만 60세를 지나면서 정년이 됐고, 회사에서는 정년을 이유로 근로계약 만료를 통보한 것에 대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회사에서 정한 취업규칙에 정년에 도달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했으나 그 속사정을 들어 보면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부당한 해고라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회사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취업규칙의 정년과 상관없이 노사 간 합의로 만 62세까지 정년을 연장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말 회사 과반수노조의 대표자가 기존 정년(60세)에 합의해 주고 회사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재고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회사는 취업규칙에 의한 정년을 원래대로 적용한 것이라 주장하나 10여년 간 연장돼 만 62세를 정년으로 인식해 온 노동자들에게는 사실상 정년단축이어서 근로조건의 현저한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예상치 못하게 단축된 정년을 맞이한 노동자들이나 소수노조에서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과반수노조의 대표자와 회사의 밀실야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무효임을 주장했지만 ‘쇠귀에 경읽기’였다.

더욱 기막히는 것은 정년 이후 재고용심사라는 것을 과반수노조의 추천을 받은 자에 한해 회사가 정한 심사기준에 따라 진행한 뒤, 재고용여부는 회사가 알아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회사를 상대로 진정·고소·고발한 자를 재고용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재고용시 평소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 노사 간 또는 노노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여부를 주요 심사항목으로 넣었다.

재고용심사라는 것이 평소 근로조건개선이나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과반수노조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정년을 맞은 노동자들뿐 아니라 재직 중인 노동자들에게도 앞으로 회사의 방침에 이러쿵 저러쿵 문제 삼지 말 것과 과반수노조에 밉보이면 재고용은 힘들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적극적인 노조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고, 과반수노조가 아닌 소수노조의 가입을 노골적으로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 정년만료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같은 기간 정년을 맞은 후 재고용된 다른 노동자들에 비하여 근무경력이나 실적·근태·건강 등에서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월등히 모범적인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정년단축에 반대의 입장을 강하게 표명하고 과반수노조를 비판하면서, 소수노조에 우호적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회사나 과반수노조의 눈 밖에 남으로써 재고용심사에서 탈락됐을 것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고령화시대. 정년연장이 정치권과 노동계의 현안으로 부각돼 가는 시점에서 이미 10여년간 연장 시행돼 온 정년을 단축하겠다는 것 자체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정년단축과 재고용심사가 노동자 길들이기와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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