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욱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가 끝났다. 하루라는 짧은 기간으로 쌍용차 정리해고의 실체를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 짧은 기간에 비해 몇 가지 드러난 성과도 있어 보인다. 우선 회사가 그토록 부정하던 쌍용차 회계부정(유형자산손상차손) 문제가 어느 정도 드러났고 “쌍용차는 1인당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회사 주장의 근거였던 HPV는 그 출처마저 조작됐음이 밝혀졌다. 유동성 위기 역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였음이 확인됐다. 이후에 좀 더 명확히 밝혀져야 할 사실들이 남아 있지만, 하루 청문회만으로도 몇 가지 의미 있는 사실들이 밝혀진 것이다.

정리해고 제도는 자본주의의 성(城)

좀 거칠게 말해서 정리해고는 자본주의 사회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외환위기 당시인 1996~1997년 정리해고 제도가 입법화됐는데, 입법화 이전에도 판례가 정리해고를 법률적으로 인정해 왔다. 인격과 분리할 수 없는 노동이 하나의 생산요소로서만 취급되는 것, 노동에 대한 자본의 압도적 우위를 선언하는 것이 자본주의와 정리해고 제도의 본질이다. 정리해고 제도 자체가 자본주의 자체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만큼 정리해고 자체를 금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에 준하는 큰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리해고 제도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견고한 성(城)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노동운동이 정리해고라는 성(城)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훨씬 더 치밀하고 광범위한 계획과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포장된 합리성이라는 방어벽을 갖춘 성(城)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 조항만을 보면 마치 법원이 굉장히 엄밀한 사법심사를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고, 모든 해고회피 노력을 다한 후에 노동조합과의 성실한 협의를 거쳐 대상자 선정까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야만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규정돼 있으니 누가 보면 “기업이 어려운데 해고가 이렇게 어렵다니”라고 하면서 정리해고를 하는 기업주를 동정이라도 해 줘야 할 것 같다. 정리해고 제도의 외관(外觀)은 정리해고를 직접 겪은 당사자들이 아니라면 마치 정리해고가 굉장히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이런 포장된 ‘합리성’을 기초로 보수언론들은 ‘합리적’인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비합리적’인 노동조합을 매도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해고 제도는 잘 포장된 ‘합리성’이라는 방어벽을 갖춘 성(城)이다.

모래 위에 올려진 합리성

그러나 그 합리성이라는 것의 실체를 보면, 정리해고 제도가 얼마나 허약한 제도인지를 알게 된다. 법률 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할 법원은 장래 경영상 필요만 있어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해석하고, 희망퇴직과 같이 사실상 정리해고에 해당하는 것들도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정해 버린다. 협의절차도 완화해서 해석하고 있다. 특히 회사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자료에 기초해 이뤄진 회계법인들의 주관적·자의적 추정들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인정하는 근거가 돼 버리고, 이 과정에서 회계조작 등의 불법행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수백 명의 노동자들의 생명이 회계법인 보고서 1~2페이지에서 결정나는 것이다. 나중에 그 보고서가 정확하지 않았음이 드러났어도 “그 당시로서는 정확하게 작성한 것”이라고 변명해 버리면 끝이다. 정리해고 제도가 근거하고 있는 ‘합리성’은 사실 매우 비합리적이다.

모래성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기를…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몇 년째 수많은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때로는 죽음에 몰아넣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정리해고에 반대한 ‘비합리적’ 노동조합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봤듯이 정리해고 제도의 실체는 매우 허약하다. 모래 위에 올려진 성이다. 겉은 튼튼해 보일지라도 사실 그 속은 비어 있는 것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청문회가 그런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작은 균열이 됐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균열을 더 키워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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