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위원장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정부의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임금과 노동조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양대 노총 공공부문 산별노조(연맹)들은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하며 공동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4차례 연속기고를 통해 무엇이 쟁점인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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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11월께 공공기관의 '2013년 예산편성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예산편성지침은 예산 운영 전반의 규제틀로 노동자의 임금결정을 구속하는 강력한 통제장치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 보면 90년 공공기관 임금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래 20년 동안 공공기관은 '공공기관 방만 경영 해소'라는 이유로 다양한 형태의 임금통제 틀에 갇혀 있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07년 이후 공공기관의 임금통제는 매우 정교한 예산지침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예산편성지침은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공공기관 운영원리 중 가장 시급하게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절차적 측면에서는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과 공공기관의 교섭권 제약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20년 동안 공공기관 임금교섭에서의 '사용자 인정 논쟁'은 노동계뿐 아니라 노사관계 학계에서도 단골메뉴였다. 공공기관 예산편성이 정부의 권한일지라도, 공공기관에 대해 '사용자' 위치에 있는 만큼 어떤 형식으로든 책임 있는 사용자 위치에서 교섭절차를 거치는 것이 민주국가의 운영원리라는 지적이다. 이는 '선진화'된 공공기관 노사관계의 척도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임금결정 및 교섭구조가 어떤 형식으로든 선진국에서 작동된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후진적 단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내용면에서도 예산지침은 모순투성이다. 정부가 20년간 공공기관의 임금을 통제해 왔지만 현재 288개 공공기관의 평균 임금수준은 산업·업종·유형별로 3배 이상 격차가 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서 획일적 인상률 관리를 지속하며, 경영평가에서 '총인건비인상률' 지표 평가에 대해 기관 특성을 고려치 않고 획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저임금 기관의 저임금을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저임금 기관일수록 시간외·휴일근무 비중이 높다. 정부의 인상률 관리방침이 결국 저임금 구조의 악순환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에 만연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대해 예산지침은 외면으로 일관해 사회적 책임도 포기하고 있다. 공공부문 스스로 ‘모범적 사용자’ 지위에서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논란이 됐던 신입직원 임금회복 부문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조치하고, 이제야 직원 양보를 통해 해결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 임금결정 과정은 공공기관 임금 정책의 모순을 배태한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MB정부 들어 기본임금을 억제하는 대신 운영토대가 취약한 성과차등(경평성과급·성과연봉제) 확대를 유도해 임금정책 왜곡이 심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예산지침 철폐’를 거론하지만, 필자는 예산지침은 필요악이라는 점에서 반대한다. 공공기관 중 수익성이 높은 기관은 그 수익이 독점 위탁구조에서 기인돼 기준 없이 배분되는 것이 적절치 않다. 공익성이 높은 기관은 국고에 의존하기 때문에 예산 배정기준 역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공기관 임금결정의 핵심인 예산편성지침 운영에 대한 정부 발상에 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공공기관 임금결정의 핵심인 예산편성지침 설정 과정에서 일방주의가 아닌 교섭주의 방식을 통해 정부 책임을 전제로 한 '집중화' 된 교섭구조를 공공기관에 반영해 절차적 후진성을 극복해야 한다. 공공부문 임금 결정의 기본 원칙(생계비 보전 원칙, 민간·공동 대등 원칙, 합리적 차별 원칙)을 제대로 반영해 내용적 모순을 치유해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임금결정 구조에 진정한 '선진화'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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