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률
2013생명평화
경제미래포럼
공동대표

새누리당이 절박한 공직선거법 개정요구를 외면하고 투표시간 연장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는 보통선거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망각한 처사다. 생업에 종사하는 선거인이 본의 아니게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할 수 있으니 투표시간 연장하자는 건 2009년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조차 발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2012년에는 왜 반대하는가.

보통선거권 보장은 보통의 잣대로 이뤄져야 한다. 정략적으로 고무줄 잣대를 댄다면 대한민국 가치에 부끄러운 일이다. 트위터 여론은 "3년 전에는 더욱 과감했는데, 왜 지금은 꼴랑 2시간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면서 거듭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있다.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광주전남시민행동'은 지난 9일 출정식을 가진 뒤, 10일 오후 4시부터 광주 금남로에서 첫 시민행동을 통해 투표시간 연장 동참을 호소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명운동을 통해 11월 말까지 현행 오전 6시~오후 6시인 투표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연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지역의 경우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2030공동행동(경제민주화2030연대·서울지역대학생연합·서울청년네트워크·청년노동광장·청년유니온·한국청년연대)과 민주노총 등이 연일 촛불집회를 벌이면서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는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는 의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옛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투표시간 연장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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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양정례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4686 발의 연월일 : 2009. 4.24
발의자 : 양정례·노철래·정영희·송영선·박기춘·강운태·손범규·송민순·김을동·정하균 의원(10인)

■ 제안이유 및 주요 내용
대의민주제하에서 선거는 국민이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므로 국민의 선거권 행사는 자유롭게 행하여질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것임. 그러나 현행은 투표관리의 편의를 위하여 투표시간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규정하고 있어 생업에 종사하는 선거인이 본의 아니게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음. 이는 저조한 투표율의 원인 중의 하나로서 최근 각종 선거에 나타나고 있는 50% 미만의 저조한 투표율은 대한민국의 가치를 떨어뜨림은 물론 해당 선거로 선출된 대표기관의 대표성마저 약회시킬 수 있어…(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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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본의 아니게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선거권자는 90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60~70%에 이른다.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새벽 6시에 출근해 투표하러 갈 시간을 사실상 박탈당한 채 작업장에 붙들려 있어야 했다. 비정규직 종사자뿐만 아니라 60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 상당수도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가진 자들, 여유 있는 자들은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핵심이라고들 한다. 국민으로서 자기 의사를 표현할 보통선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은 다른 무엇보다 시급히 타파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일, 국회의원 선거일은 대의민주제하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보통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이 선거일을 국가는 유급휴일로 하고, 투표시간은 대개의 유럽 여러 나라들의 경우처럼 오후 10시까지로 보장해야 한다.

보통선거권은 19세기 중반 이래 유럽에서 개시돼 1945년 해방 이후 민주공화국의 헌법으로 보장돼 있다. 지금처럼 비정규직 등 약자에 대한 근본적 차별에 다름 아닌 현실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통선거권 행사 권리를 국민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고무줄 잣대가 아니라면, 국민으로서 권리행사를 제한당할 이유가 없다면 보통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에 부끄러운 역사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각 당의 대선후보들이 앞장서고, 시민사회 주인들이 나서 18대 대통령 선거일(12월19일) 이전에 보통선거권의 핵심인 투표시간 연장을 관철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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