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까지 내려져 도입된 지 1년이 넘은 교섭창구 단일화가 여러 폐해를 낳고 있다. 도입되던 달인 지난해 7월 창구단일화 구제신청 건수는 33건이었으나 올해 5월에는 138건이나 돼 4배 넘게 증가했다. 그중 교섭단위 분리결정 신청 건이 46.8%에 달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창구단일화에 대한 노사 양측의 불만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노조측에 불리한 규정으로 인해 그 폐해는 대부분 노조와 종업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문제는 사용자측이 창구단일화를 빌미로 교섭을 거부할 수 있고, 이를 조정하고 결정하는 전권이 노동위원회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예는 복수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사업장에서조차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잣대를 들이대 교섭을 거부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지난 7월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는 금속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절했고, 중노위는 산별교섭에 참여하더라도 사업장별 창구단일화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이 회사에는 금속노조 지회 외의 다른 노조가 없는데도 말이다.

같은 이유로 산별교섭에 참여하는 단일노조 사업장임에도 행정지도 결정을 받은 곳은 금속노조 중앙교섭 참가 사업장만 7곳이나 된다. 게다가 법원 판례에 따르면 행정지도 결정이 나온 후 노조가 벌이는 파업은 불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행정지침 등이 명확하지 않아 회사나 검찰이 불법파업으로 몰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창구단일화 제도는 근로자 다수 대표성을 갖춘다는 것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동일한 목적과 논리를 갖춘 프랑스의 2004년 창구단일화 법률은 우리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또 다른 산별교섭에 의해 결정되며, 설사 창구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사용자는 이를 빌미로 교섭을 회피할 수 없다.

산별협약으로 단협이 체결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른 점은 있지만 일단 단일화 차원에서만 문제를 보자. 프랑스에서 각 산별협약은 해당 산업에 속하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하나 또는 둘 이상의 대표적 노조가 서명하면 유효하다. 그 과반수 대표성을 평가하는 방식은 대개 정기적인 근로자자문투표를 실시하거나 가장 최근에 실시된 근로자대표선거에 따른다는 별도의 산별협약인 선거협약으로 정해진다. 구체적인 선거방법도 노사 간 선거협약에 따른다. 그리고 최근에 실시된 근로자대표선거는 기업위원회 근로자위원 선거나 종업원대표위원 선거를 말한다. 다시 말해 노사협약에 따라 선거협약이 결정되지만, 창구단일화는 종업원들의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선거협약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단체협약은 체결되는데, 일단 체결된 협약은 프랑스의 5개 대표적 노조들 가운데 과반수가 협약의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반대하지 않으면 유효하다. 예를 들어, 교섭에 참여한 5개의 대표적 노조들 가운데 어느 한 노조가 협약에 서명한 경우 다른 3개의 노조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해당 협약은 유효하다. 역으로 다른 3개의 노조가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해당 협약은 유효하지 않게 된다.

비록 거부권을 행사한 3개의 노조가 가장 최근에 있었던 근로자대표 선거에서 획득한 득표율이 50%에 미달하고, 서명한 1개 노조의 득표율이 50%를 초과하더라도 해당 협약은 유효하지 않게 된다. 이는 근로자과반수 대표성 원칙의 예외가 되는데, 이것은 산별 노사 당사자들이 ‘선거협약’을 체결하도록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된다.

단체협약 체결은 회사를 지탱하고 운영하는 종업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규정하고, 이를 노조가 대표하는 중요한 산업행위다. 따라서 근로자 다수 대표성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근로자 다수 대표성 원칙은 어디까지나 근로자들에 의해 결정돼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기업은 이를 빌미로 이와 같이 중요한 산업행위를 해태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처럼 다수 대표성 원칙의 실질적인 합리적 절차를 재규정하거나, 상황에 따라 이 절차가 지켜지기 어려울 경우에는 일단 대표적 노조들에 의해 단체협약을 체결한 후 다수의 의사를 물어 그 효력을 승인받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19대 국회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노동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교섭창구 단일화 법률에 대해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