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국장

지금 경북 구미는 아수라장이다. 구미 산업단지 ㈜휴브글로벌 불화수소가스 누출 산업재해로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현재까지 6천여명이 건강문제를 호소하며 건강검진을 받았다. 앞으로 피해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재해 방치한 정부는 노동자 살인의 공범자다!

이번 사고는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식과 예방을 위한 노력은 매우 미흡하다. 정부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지도·감독을 강화해야 함에도 감독관수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사실상 업무를 방치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2009년 6월에도 비슷한 사고가 휴브글로벌에서 있었다. 노동부가 사고 이후 화학물질 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를 강화했다면 이와 같은 최악의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부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예방할 수 있었던 산업재해를 방치한 노동자 살인의 공범자라 할 수 있다.

노동자 과실이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고?

이번 사고에 대해 경찰은 사고발생의 책임을 작업자 과실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산재에 대한 정부와 사업주의 책임은 밝히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사망한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아주 비열하고 나쁜 짓이다. 노동자가 취급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사업주가 제대로 알려 주고 안전보건교육을 철저히 실시하고 사고예방을 위한 안전장치를 설치했다면, 노동부가 사업장 안전보건 감독을 철저히 수행하고 예방대책을 마련했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까. 이번 사고는 노동자 과실이 아니라 이를 방치한 사업주와 노동부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도 문제다. 이번 사고의 근본원인은 무엇인지, 왜 매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없이 그저 경찰 관계자가 발표한 내용만 보도하고 있다. 이런 보도행태는 대부분의 산재사고를 노동자의 과실로 마무리하면서 아무런 개선이 없도록 하는 데 일조한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산재 발생의 원인과 책임 그리고 대책 등에 대해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나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연설 등을 통해 선진국 수준의 재난·재해 예방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수차례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약속을 담당부처가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구미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역주민들에 대해서는 대피령을 내렸지만 주변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피령도 없었다. 노동부가 주변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작업을 중지시키고 대피를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 사고였는데도 노동부는 대통령의 질책이 떨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불화수소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임시건강진단을 실시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다.

어이없는 일도 우리 눈앞에서 일어났다. 아니 이게 우리나라 정부, 사업주의 의식, 지적수준이다. 불화수소가스 같은 맹독성의 가스가 누출됐는데 사고 현장 인근 주민들에게 방진마스크를 지급했다. 정부가 제공해 준 방진마스크가 불화수소가스를 막아 줄 거라 생각했을 테지만 모두들 속았다. 사고당시 CCTV를 보면 사업주도 노동자에게 방진마스크를 지급했다. 그동안 맹독성인 불화수소가스를 그대로 들이마셨을 노동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정부와 사업주에게 강력히 요구한다. 노동자의 죽음과 건강을 방치한 노동부는 유족과 피해노동자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만 모면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근본적이고 강력한 화학물질 관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선후보들에게 다시는 이런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주와 정부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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