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금융노조 산하 35개 조직 중 최근 1년을 가장 바쁘게 보낸 곳은 농협중앙회지부(위원장 허권)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신용-경제사업 분리계획이 당초 계획보다 5년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같은해 10월 허권(48·사진) 위원장이 취임한 뒤 정부를 상대로 한 신경분리 반대투쟁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올해 3월 사업부문별 지주사 체제로의 개편을 핵심으로 한 신경분리를 강행했다. 소관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농협에 고용과 조직개편 문제를 담은 경영개선계획이행약정서(MOU) 체결을 요구했다. 상급단체와 함께 총파업을 건 투쟁 끝에 지부와 농협중앙회 사이에 특별단체협약이 체결됐다. 급한 불이 꺼지나 싶더니 곧바로 지부 조합원 80% 이상이 소속된 NH농협은행에 복수노조가 생겼다.

허권 위원장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 본점 지부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지난 1년은 전체 1만5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신경분리의 폐단을 몸속 깊이 체험한 시간이었다"며 "차기 정권에 이에 대한 해결책과 기존에 약속한 자금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신경분리가 시행되고 7개월여가 흘렀다.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나.

“폐단이 드러나고 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졸속적으로 신경분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12조원의 부족자금 중 6조원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있으나 마나 한 세제혜택과 이차보전 등으로 오리발을 내밀었다. 결국 11조원의 빚을 농협이 떠안은 상태에서 사업을 이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가.

"간판 교체비용은 문제도 아니다. 미흡한 법률검토로 은행법·공정거래법을 위반해 잃게 된 손실만 수백억원에 달한다. 법인 분리에 따른 조합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고용불안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도 크다. 천문학적인 빚 때문에 비수익부문인 지도사업에 대한 투자가 없어 농민실익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빚에 대한 부담으로 경영활동이 움추러드는 3중고를 겪고 있다."

- 정부는 신경분리가 시행된 다음달 MOU 체결을 요구했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약속은 지키지 않고 쥐꼬리만 한 보조금 지원을 빌미로 농협을 손에 쥐려 했다는 사실이다. 금융노조와 함께 산별총파업까지 내건 투쟁을 벌인 끝에 ‘노사합의 없는 이행계획은 원천무효’를 분명히 한 특별단협을 체결했다. 지난달 7일 농협이 세부이행계획을 농림수산식품부에 제출했다. 노사가 함께 내용을 점검했는데, 농협의 자율성이나 조합원 고용안정을 해칠 만한 요소는 없었다. 특별합의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이행 여부를 평가하고 언제든 내용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 8월 초 NH농협은행에 복수노조가 생겼는데.

“신경분리로 금융부문이 여러 법인으로 분화한 것이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신경분리 이전에 조합원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원들에게 박탈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은행이 농협중앙회의 수익센터 역할을 하면서도 승진 등에 있어 교육지원 사업부에 밀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 법인단위 노조 설립을 인정하는 것인가.

“복수노조 설립이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 다만 지주사 체제로 개편된 지금이 역설적으로 제1 노조인 지부의 강점이 발휘될 수 있는 시점이다. 농협중앙회는 일반 금융지주보다 훨씬 다층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를 아우르는 농협중앙회가 있고, 그 위로 지역 조합장들의 의결기구인 농축협이 있다. 실질적인 사용자가 이중삼중으로 겹친다. 은행만의 노조로는 이들이 쳐 놓은 방어막을 뚫기 어려울 것이다. 지부는 올해 초 신경분리 시행에 앞서 농협중앙회 부회장급이 교섭의 당사자가 되는 것에 합의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난 1년 동안 전국의 어떤 노동자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투쟁의 현장을 지킨 조합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짧은 경험이지만 이를 교훈 삼아 앞으로 부족한 것을 승화·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 특히 그동안 승진 등에서 박탈감이 많았던 은행 조합원들을 위해 보다 노력할 것이다. 졸속적인 신경분리가 가져온 폐단은 입이 닳도록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이를 추진한 이명박 정권하에서는 구체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차기정부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신경분리의 폐단을 바로잡고, 자본금 지원 등 그동안 정부가 쏟아낸 약속을 지키도록 촉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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