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대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대선후보 간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민생과 경제민주화를 책임질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전망 제시 이외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책과 계획으로 이를 실현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대선후보를 배출한 여야 정당 역시 여러 법안들을 국회에 발의하는 것 이외에 실제 입법을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여의도와 광화문 등 곳곳에서는 문제의 실제 해결을 촉구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숙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몇 가지 예만 살펴보아도 ‘선언’이 아닌 ‘문제해결’의 단초가 어디에 있는지 잘 드러난다.

건설기계·학습지·화물차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지난 9일부터 새누리당사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3권과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하려는 법개정 안이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데, 이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집권여당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 등의 방식으로 노동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노동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규모는 25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용실의 헤어디자이너에서부터 방문검침원·택배기사·퀵서비스기사·간병사·대리운전기사·강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생활하면서 접하게 되는 상당수 직종의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로 취급되면서 최저한의 노동기준도 적용받지 못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절반은 소득이 월 100만원 이하의 저임금 노동자임에도 노동법과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조합으로 모여 싸우는 것이지만, 정부와 법원은 이마저도 해서는 안 된다고 제동을 걸고 있다.

2010년 대법원 판결로 현대자동차의 노동자임이 확인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정규직은커녕 해고자가 돼 여의도에서 상경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2년이 넘도록 현대차는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반면 현대차를 상대로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01명이 해고되고 711명이 중징계를 받았으며 336명에 대해 8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고, 원하청 사용자에 의해 부당해고된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라는 것이다. 현대차가 실질적 사용자로서 책임을 분명히 지라는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와 사내하청 노동자의 요구는 다른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돼 있다. 계약형식이 어떠하건 노동을 통해 생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 그리고 이들의 노동을 통해 이윤을 얻는 사용자에게 그에 따르는 책임을 부여하라는 것이다. 정치권이 실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출발점 역시 이처럼 간명하다.

현재 국회에는 노동 3권을 보장받는 ‘근로자’의 범위를 현실에 맞게 확대하고, 실제 사용자에게 노동법상 책임을 부여하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여야가 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대선 후보자들이 진정으로 비정규직과 민생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2년이 넘게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지금도 불법적 파견노동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해야 한다. 불법 파견을 사용한 사업주에 대한 구속 등 처벌, 불법 파견을 제공하고 있는 사내하청업체들에 대한 폐쇄조치 등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해결책들이 있음에도 대선 후보자들도 여야 정당들도 “나에게 표를 주면 장래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라는 구호만 남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조차 미루고 있는 정치세력들만 바라볼 때 달라지는 점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동자·시민이 함께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고자 한다. 오는 27일 서울역에서 ‘노동하는 자에게 권리를! 사용하는 자에게 책임을! 중간착취 이제 그만!’을 요구하며 10만 촛불행진을 진행한다. 정치권·기업에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도록 만들고 노동자·시민 스스로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27일 우리 함께 촛불을 들자.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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