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직장여성은 일터와 가정 양쪽에서 죄를 지으며 산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마치고 출근한 뒤 "놀다 왔네"라는 말을 듣는 것은 참을 만하다. 조금만 길어지면 "잘됐다"는 듯 퇴직을 시키니 충분히 아이를 돌볼 수 없다.

보육시설은 변변하지도 않지만 그나마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식구들에게"미안하다"는 말과 생후 2개월된 아기를 남기고 회사로 나가야 한다.

3개월된 아기가 있는 중소기업 L사 여성과장 윤모(34)씨는 배신감을 삼키며 10년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보모를 알아봤지만 월급의 절반이 넘는 100만~120만원을 달라고 했다.

보육시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정원이 찼다. 믿었던 사장은 육아휴직 6개월을 신청했더니 "차라리 그만두라"며 표정을 바꾸었다.

우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가임연령을 전후로 급격히 낮아진다. 20대초에는 60%를 넘다가 25~34세에서는 50%를 조금 웃돌게 된다.

1인당 소득이 5,000달러에 못미치는 회교국가 말레이시아의 여성들과 비교할 때도 20대초에는 월등히 높다가 가임연령에는 도리어 낮아지는 '기형구조'를 갖고 있다. 그만큼 우리 직장 여성들에게 지워지는 출산촵육아 부담은 세계적으로 가혹한 것이다.

한 부부가 낳은 자녀수를 표시하는 조출산율은 1.42로 세계 최저수준이라는 핀란드(1.70)보다도 떨어졌다. 이 역시 우리 주부사원의 고난을 여실히 보여주는 통계치다.

유급 출산휴가와 무급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도 보이지 않는 장벽에가로막혀 제대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전국여성노조의 지난해 조사 결과 평균 출산휴가일수는 45일로 가능기간인 60일에 크게 못미쳤다. 노동부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사용률은 2.3%에 불과해 유명무실해졌다.

지난해말 노동부가 출산휴가를 90일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늘어나는 30일분의 임금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는 바람에 처리가 무산된 상태다.

보육시설 문제는 얘기할 필요도 없다. 보육원시설수는 1만9,000여개로 전체 5세 이하 아동 가운데 35%밖에 수용하지 못한다.

그나마 몇몇 기업들이 모성보호를 위한 투자를 해 희망을 주고 있다. 충북 청주시 한국도자기는 수영장까지 달린 직장보육시설을 만들어 120여명을 무료로 돌봐준다. 또 서울의 화장품업체 로레알코리아는 육아부담이 있는 주부들에게 주3일 근무제를 실시한다.

의약품도소매업체 한국로슈는 출산을 위한 의료비 전액을 지원한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들 기업들의 모성보호 노력은
수년간길러놓은 인력을 잃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 때문"이라며 "다른 기업들도 이 부분에 대해 잘 따져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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