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
(고대 노동대학원,
 경제학)

현대자동차 심야노동 축소 교섭의 의미

현대자동차 노사는 2012년 임단협을 통해 오랜 기간 논의만 분분했던 심야노동 축소에 합의하고, 초장시간 노동 체제로부터 탈피하는 한 획을 그었다. 가동률을 극대화하고 장시간 노동을 구조화하는 주야 2교대제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확산하고 고착화하는 원인이기에 주간연속 2교대제로의 이행은 우선 바람직한 변화라는 덴 이견이 없으리라고 본다. 심야노동과 장시간 노동은 직장생활과 가정, 사회생활의 조화를 깨트리며 노동력의 마모와 퇴화를 촉진하기에 노동자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사용자가 양보의 미덕만 발휘한 건 결코 아니다. 노동력의 조기 쇠퇴는 사용자에게도 바람직하지 않고 심야노동의 비용 효율성도 따져 볼 시기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이제 품질과 생산의 효율성이 중시되는 단계에서 장시간 노동 체제로는 질적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고 세계시장 경쟁에서도 오히려 비판과 흠집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 심야노동 대폭 축소(여전히 오전 1시10분까지 일하며, 완전 이행시에도 밤 12시까지 일한다)는 장시간 노동 체제로부터의 탈피라는 시간단축을 향한 한쪽 문을 열었지만, 또한 생산의 효율화 즉, 노동밀도의 강화가 초래할 생산의 유연화라는 다른 쪽 문도 동시에 열었다. 점심시간과 휴일을 줄이고, 생산속도를 높여(시간당 생산대수 30대 상승) 줄어든 노동시간의 양을 밀도를 높여 대부분 보충한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시간단축과 노동밀도의 상승을 교환한 것이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시간의 길이와 생산의 양을 중심으로 한 생산체제에서 노동의 밀도와 생산의 질을 중시하는 체제로의 이행을 위해 생산관리의 효율화를 향한 불확실성을 감수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쟁점은 총임금의 약 15%를 차지하는 과거의 고정적 잔업에 따른 시간외수당을 포함하는 실지급 임금이 보전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월급제를 통해 임금보전을 원칙으로 이뤄졌기에 노동자들이 별로 잃은 게 없는 교섭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런데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생산량을 보전하는데 임금을 보전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입장에서 밑지는 장사일 것이다. 임금의 하방경직성을 고임금 생산직 노동자에 대한 비판의 잣대로 들이대는 경향이 있는데, 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에겐 무슨 큰 사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하루아침에 임금이 깍이는 걸 눈 뜨고 지켜보고 있는 게 바보짓일 것이다. 잔업은 고정적이었고, 고정적 잔업수당은 항상 받는 임금의 불가결한 구성물이었으며, 주야 2교대제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노사 간 충분히 타협가능한 공간이 있었다. 이번 합의안은 누구에게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용자가 잃은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노동자는 노동강도 강화라는 확실히 감수할 사항이 생겼다.

현대차 합의안에 대한 비판적 언급과 그 변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를 향해 쏟아지는 비판적인 언급을 사용자 쪽에 가까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노동 쪽 사람들의 글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고임금이다, 노동강도가 원래 낮았다, 비정규직에 대한 교섭을 해태했다, 고용창출의 여력을 방기했다, 부품사의 심야노동 해소에 대한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 등이다. 이 중 고임금과 노동강도 논란은 오래된 비판이자, 합의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결국 사용자 쪽을 손들어 주는 성격의 비난이다. 대기업이 앞서 나간다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이 긍정적인 파급영향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원인규명과 ‘생산직, 고졸 기준의 임금이 이렇게 높아도 되는가’ 하는 비난이 뒤섞여 어디까지가 현대차지부의 책임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두 문제는 분리돼야 한다. 고임금에 관한 한 현대차지부와 조합원이 감수할 비판은 산업별 임금교섭을 구축해 임금 상향 평준화의 추동력을 발휘할 선도적인 위치의 책임을 충분히 감수하지 않았고, 그래서 노동시장 분절화를 통한 이윤극대화 추구라는 사용자들의 압력과 정부의 무기력에 대응하는 태세를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 한 가지일 것이다.

노동강도는 차종별로 설비수준별로 별도로 측정해야 하고 이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없기에 엄밀한 비교 평가 자료를 찾기 어렵고, 막연하게 일방적 평가를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래도 낮은 게 확실하다거나 그렇게 보인다고 주장한다면, 적어도 이점 한 가지는 되새겨야 한다. 장시간 노동 체제에서 노동강도마저 높다면 노동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똑같은 동작을 한 시간에 수십 번, 하루에 수백 번 되풀이하고, 1년이면 밤낮을 번갈아 수만 번, 10년이면 수십만 번 되풀이 한다고 생각해 보자. 작업속도 1초 높이는 것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런 사안에 작업장 교섭력으로 약간의 틈새를 만들어 온 것이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성과 중 하나다. 이번 교섭을 보면 시간을 줄이면 강도는 어느 정도 높일 수 있으며, 강도는 노동시간의 총길이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일 뿐이다.

필자도 주장했던 비판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계기를 고용창출이나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해법으로 활용하지 못해 사회경제적 의미를 극대화하는 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품사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지 않거나 사내하청 고용안정 문제를 특별교섭으로 분리한 점도 마찬가지로 이번 교섭이 명분의 문제가 아니라 실용적인 답을 찾는 데 주력했음을 보여 주는 사실이다. 이런 점이 현대차지부의 새로운 변화라고 보지는 않는다. 소용도 없는 명분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명분을 다 버리고 실용주의로 이행했다고 볼 건 아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확실히 취했다고 해서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현대차지부는 기업단위 조직일 뿐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안에서 그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에 문제일 뿐인데, 그건 현대차지부 조합원의 문제는 아니며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운동 내 논의일 뿐이다.

사회경제적 의미 극대화 해법 있다

현대차 합의안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일개 사업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 또는 분노에서 비롯된다. 상징성과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치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분노이든, 지나치게 많이 받는다는 저주이든 간에 현대차지부를 향한 비판은 언제나 과도했다. 심야노동 축소교섭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요구는 현대차지부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장 범위 안에 머물렀던 노사 교환을 확장하기 위한 사회주체의 능동적·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다. 고용불안과 양극화 시대에 노동시간단축의 의미는 고용창출과 고용안정화를 위한 사회적 기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먼저 이번 합의안 자체의 맹점에서 출발하자. 이번 합의안을 보면 휴일 잔업 여부가 비어 있어 줄어든 노동시간이 휴일노동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올해 고용노동부가 휴일노동을 시간외노동 한도에 포함시키겠다는 행정지침을 갖고 대공장을 압박하다 멈춘 지점에서 여전히 멈춘다. 당시 현대차 자체 보고에 따르면 900여명의 신규채용 여력이 발생한다. 일부 전환 과정에 조정이 불가피한 공정이 아니고 휴일노동을 상시화한다면, 이는 비판받아서 마땅한 일이다. 심야노동 철폐, 노동시간단축의 대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사용자는 여전히 잔업에 의존하려는 낡은 생산관행과 단절하지 못한 것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스스로 휴일노동을 금지하는 자기결단이 필요하다.

둘째, 시간은 줄고 밀도는 높아지면서 생산량 배분방법을 둘러싸고 조정 필요성이 있다. 물량 이동과 전환배치가 어떻게 이뤄질지, 설비 보완투자로 해결할 부분과 인원충원을 통해 해결할 부분 등 양자택일로 할 점과 방법을 둘러싸고 해결할 부분이 남아 있다. 고용창출 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고용을 중시하는 해결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은 불법파견과 별개의 인력충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사내하청 특별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회사측은 3천명 전환안을 협상안으로 내놓은 바 있다. 최병승 조합원의 불법파견 판결로 전환돼야 할 인원의 기준을 회사측은 생산공정에 투입된 사내하청 총원 6천800명이 아니라 3천명이라고 보는 근거와 기준을 밝혀야 한다. 나머지는 진성도급이라고 판단해서 제외하는 것인지 객관적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선별적 기준을 적용해 사내하청의 일부 정규직화를 미끼로 비정규직의 굴종을 강요하는,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정규직 전환방식의 재판이라는 비판을 비껴 갈 수 없다. 더구나 한시하청 1천200명은 일찍이 해고하고 말았다. 비정규직 착취와 남용을 일삼는 현대차의 오명은 일부 직접고용, 정규직화로 풀리지 않는다. 비정규직 남용의 대표적 사례인 사내하청 활용방식을 1차 하청까지 확산시켰던 현대차가 이런 태도를 지속하는 한, 한쪽에서 풀고 그 이상으로 다시 배출하는 기업들의 비정규직 착취 의존구조에 어떤 전기도 마련되지 않는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다. 대법원 판결을 기초로 객관적 기준을 적용해서 판단하는 전제하에서 전부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사회주체들의 능동적·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상징으로 만들고 간접고용 해결의 모델이 될 것이다.

셋째, 주간연속 2교대제를 매개로 완성차업체의 산업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일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품업체들이 완성차 주간연속 2교대제 실시에 맞춰 부품조달 및 자기 생산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완성차가 상당한 지원을 해야 한다. 원·하청 생산사슬에 따라 전개될 수밖에 없는 변화를 부품업체 스스로 감당하기 벅차다. 우선은 부품업체의 설비개선 등을 위해 완성차에서는 완성차 생산성 향상에 투자하는 자금에 필적하는 수준만큼 부품업체 교대제 개선을 위한 기금으로 출연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직서열체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완성차 주변에 별도의 부품 공급 공간을 세워 조달시간 변경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부품업체의 재고일수를 0.5~1일 정도 연장하는 방법도 강구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부품업체의 교대제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것은 금속노조가 산업적·사회적 교섭으로 이끌어 내야 할 부분이다.

심야노동 축소라는 역사적 계기를 노동시간단축과 고용의 선순환 관계를 형성할 역사적 전기로 만들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휴일노동을 배제하고, 생산량 배분 과정에서 인력충원을 우선시하는 해법을 적용하고, 한시하청을 포함해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을 통한 배치를 적용하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해법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해법에 동원할 제도적 기제를 마련함과 동시에 그 이전에라도 우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책적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사용자는 비정규직 착취와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는 생산체제에서 탈피하고, 효율적인 생산체제와 인간적인 노동이 결합되는 생산방식으로 전환을 위해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활용구조, 잔업의존 구조에서 벗어날 계기를 결합할 전향적인 방안에 귀 기울여야 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시간단축과 삶의 질 향상, 고용창출과 안정화라는 대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휴일노동을 배제하고, 전환배치 과정에서 비정규직 충원을 우선시하는 방안에 초점을 둬야 한다.

현대차 심야노동 축소 합의안의 사회경제적 의미를 확장하는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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