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 편집국장

한창기는 한국브리태니커를 설립했다. 한창기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60년대 초 험프리 당시 미 부통령으로부터 “내가 만난 동양인 중 가장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란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한창기는 출세의 길을 버리고 책 외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창기의 브리태니커는 <한국 민화의 멋> <숨어 사는 외톨박이> 등으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의 생각 자체를 바꿔 놨다. 그동안 전통문화는 고리타분하거나, 귀족들의 놀이문화였다는 시각이 다수였다. 그러나 한창기는 민중의 시각에서 역사를 읽는 혜안을 발휘했다.

한창기는 국어학자도 울고 갈 실력 있는 재야 국어학자였다. 전통문화의 부활을 이끈 문화운동가였다. 한창기는 70년 잡지 <배움나무>를 시작으로 77년 <뿌리깊은나무>를, 84년 <샘이깊은물>을 만들어 월간지 시장의 혁신을 이끌었다. <배움나무>와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지낸 윤구병 같은 글쟁이도 발굴했다.

잡지 <뿌리깊은나무>는 순 한글 가로쓰기 편집으로 당시 출판계에 혁신주자였다. 탄탄한 사실에 기반한 사회비판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에 걸쳐 전방위였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과 함께 이 잡지를 강제 폐간시킨 것만 봐도 <뿌리깊은나무>는 대단한 잡지였다. 70·80년대 한국 탐사기자의 대표주자였던 조갑제도 이 잡지에 자주 기고했다.

1945년 충남 공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건국대 경제학과를 나와 71년 한창기의 브리태니커 외판원이 된다. 입사 첫 달에 26질을 팔아 국내 1등을 기록한다. 입사 1년 만엔 브리태니커 54개국 최고 판매원이 된다.

윤 회장은 입사 직후 이대생이던 김향숙을 만나 결혼하고 입사 10년도 안 돼 32살에 상무로 승진한다. 윤 회장은 부사장 제의를 물리치고 80년 35살에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 영어회화 교재와 학습 테이프를 파는 회사였다. 전두환 신군부의 과외 금지조치로 유명강사의 강의 테이프를 녹음해 판매하는 사업을 구상했던 것이다. 직원 7명으로 시작한 이 작은 회사가 오늘날 웅진그룹의 시초다.

한창기는 80년 신군부 등장으로 <뿌리깊은나무>가 폐간되면서 날개가 꺾였다. 그러나 윤석금은 승승장구한다. 신군부는 한 사람에겐 어둠을 몰고 왔고, 다른 한 사람에겐 빛을 줬다.

윤 회장은 이후 웅진출판을 세워 어린이책 시장에 뛰어들어 대박을 친다. 웅진코웨이 정수기 렌탈사업, 아침햇살과 초록매실 같은 음료시장에서도 성공했다.

지금 웅진그룹은 윤석금 회장의 ‘세일즈맨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연매출 6조원에 재계 31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윤 회장의 욕심이 과했다. 정수기·교육·출판을 넘어 식품·소재산업부턴 위험해 보이더니, 끝내 2007년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2010년엔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해 금융업까지 진출했다. 결과적으로 공격적 M&A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승자의 저주’라고 말한다.

지난 26일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윤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 당일 웅진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해 경영권에 강한 미련을 드러냈다. 부인 김향숙씨는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보유한 웅진씽크빅 주식을 모두 처분해 비난을 사고 있다. 채권단은 고의부도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과유불급’이다.

한 우물을 판 한창기 선생이 그립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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