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쌍용자동차 22명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쌍용자동차 회장과 고용노동부장관이 가장 많이 한 말은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들도 복직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말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이래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마치 이 주장이 진리의 근원인 양, 경제정책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나왔다.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하는 이유도,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도 “기업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재벌총수들의 비리를 조사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노동자들에게는 세금을 쥐어짜면서도 법인세는 감면해 주는 이유도, 각종 규제조치를 없애는 이유도 “기업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기업이 살면 노동자가 사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3일자 경향신문에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대한상공회의소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10대 주요업종의 매출액 1위인 10개사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2.5배 커졌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10개사가 고용한 종업원수(4대 보험 적용기준·비정규직 포함)은 3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업의 매출이 그렇게 늘어나면 당연히 고용을 늘리면서 사회에 기여해야 할 텐데,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고용 없는 성장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의 이익에 비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소득을 의미하는 노동소득분배율도 이미 60%대가 붕괴했다. 기업은 점차로 배를 불리는데, 노동자들의 몫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굳이 통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현실에서 그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아웃도어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K2는 매출이 급격하게 오르던 시기에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콜트악기는 매출이 증가하는데도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 버렸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항상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매출이 좋으면 이것은 일시적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쁘면 나쁘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더 많이 일하라고 다그친다. 도대체 기업이 얼마나 좋아져야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하는 걸까.

물론 기업이 어려우면 노동자들에게도 여파가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정말로 참고 기다리면 기업이 살 수 있는 것일까. 세금을 줄여 주고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해 주면 기업이 살아나는 것일까. 기업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글로벌 경제위기란,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는가와는 무관하게 국제적 경쟁 과정에서 언제라도 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대기업들은 규제되지 않는 권력으로 하청업체들에게 단가를 인하하라고 압력을 넣고, 중소기업의 영역에까지 진출해서 무너뜨려 버린다. 이런 대기업들의 전횡은 수많은 작은 기업들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규제되지 않는 금융자본의 불안정성으로 세계적 기업 GM도 파산한다. 지금 위기의 원인은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제되지 않는 기업의 권력,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세계적인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동자들이 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정당성이 없다. 지금은 기업의 이윤이 사회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시대다. 그러므로 기업이 살아난 이후에는 갑자기 기업들이 착해져서 노동자들에게 시혜를 베풀 것이라는 헛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 기업들은 이윤을 위해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거대한 괴물이다. 이미 이들에 의해 22명의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900만 비정규 노동자들이 안정된 노동의 권리를 잃었고, 200만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도 도저히 먹고살 수 없는 최저임금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렇게 달려가는 기업의 이윤논리는 환경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고 공공성을 파괴한다. 그리고 더 규제가 약한 해외로 이전하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그러다가 자신의 기반인 자본주의도 위기에 빠뜨리고 더 많은 희생을 만들어 낸다.

이 불안정한 시대, 노동하는 이들의 삶이 고통인 시대,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고 행복하고자 한다면 ‘기업이 잘되기를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기업의 권력을 규제할 힘을 가져야 한다. 그 힘에 의거해서 사회를 재편해야 한다. 기업이 망할 것 같으면 사회적으로 그 기업을 운영하면 된다. 이윤이 아니라 노동하는 이들의 삶과 그 기업이 속한 공동체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면 된다. 이미 그 파괴성이 극에 달해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 진정 노동자들이 살고자 한다면 스스로 권리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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