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토마토 노무법인 대표)

사건의 개요

재해자는 재해발생 직전 회사에서 6일간 계속 야근을 수행한 후 본인 소유의 차량을 운전해 회사로 출근하던 중 앞차의 뒤 범퍼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그는 병원으로 가 치료를 받았으나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원고(유족)는 망인이 업무상 과로 및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뇌경색이 발병됐고, 그로 인해 이 사건 교통사고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피고(근로복지공단)는 “망인이 뇌경색 발병 이전에 업무상 과로했다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인정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므로 망인의 사망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족보상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했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망인의 뇌경색이 이 사건 교통사고로 비로소 발병했다 보기는 어렵고, 망인이 이 사건 차량을 운전하던 중 뇌경색이 발병해 이 사건 교통사고를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해발생 이전 망인의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있었음을 인정한 후 과로 및 스트레스가 기존 질병(혈관염)을 급격히 악화시켜 뇌경색이 발병됐다며 1심 판결을 취소했다.

대상 판결의 쟁점

이 사건 판결의 가장 큰 쟁점은 ‘출근 중 교통사고 후 사인이 뇌경색으로 판단된 사건에 있어서 뇌경색이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발병한 것인지 아니면 뇌경색에 의해 재해자가 의식을 잃고 2차적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는가’다.

뇌경색이 교통사고의 원인으로 추정된다면 뇌경색을 유발할 정도의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존재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먼저 교통사고의 후유증 또는 합병증으로 뇌경색이 발병했다면 최초의 원인에 해당하는 교통사고가 업무에 기인한 사고인가부터 판단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을 제외한 일반 근로자의 경우 출퇴근 중 재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사업주가 제공한 출퇴근 차량이 아닌 이상 근로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본인의 승용차를 이용하다 출퇴근 중 재해가 발생한 경우가 그렇다. 출퇴근 과정에 사업주의 지배 개입이 없었다는 점과, 출퇴근 차량의 관리·운영권이 전적으로 근로자에게 맡겨져 있었다는 논거로 업무상 재해를 부정하고 있다.

반대로 이 사건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운전 중 갑자기 뇌경색이 먼저 발생하고 난 후 그 증상(의식소실·판단력 감퇴 등)에 의해 불가피하게 교통사고가 났다면 사망의 1차 원인이 되는 뇌경색의 업무기인성이 먼저 판단돼야 한다.

한편 부검소견서는 망인의 뇌혈관에서 혈전이 확인되며 혈관벽 염증이 동반된 상태로 급성뇌경색이 온 것으로 판단했다. 해당 급성 뇌경색은 교통사고와 관련된 외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망인의 사망은 사고사가 아닌 병사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정했다.

판결의 요지

본 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망인의 뇌경색이 교통사고로 인한 두부손상으로 급성 뇌경색이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의학적 소견이 있기는 하나, 망인에 대한 부검 소견에서 외상에 의한 뇌경색 가능성이 없었음을 받아 들였다. 망인의 뇌경색이 이 사건 교통사고로 비로소 발생했다 보기는 어렵고, 망인이 이 사건 차량을 운전하던 중 뇌경색이 발생해 이 사건 교통사고를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한편 고등법원은 망인이 소외 회사에서 진행되던 대부분의 설계업무를 총괄했고 이 사건 교통사고 발생 전 뇌경색 발생 전까지 주 3~4회 정도 야근하고 주말에도 자주 근무한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이 사건 뇌경색 발생 일주일 전에는, 6일 연속 야근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망인이 뇌경색 발병 이전에 업무량 증가와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했다.

대상판결의 의의

일반적으로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에 의해 뇌·심혈관질환이 발병한 경우 재해자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머리 등에 외상까지 겹쳐 재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재해 당시 목격자가 없는 이상 해당 재해가 사고(미끄러짐·추돌 등)에 의해 뇌심혈관질환이 2차적으로 발병했는지, 아니면 뇌심혈관질환이 원인이 돼 사고가 2차적으로 발생했는지를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부검소견에서 교통사고에 의한 외상성 뇌경색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명확히 부정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크게 쟁점화 되지 못했다.

그러나 비슷한 사례에서 부검소견이 명확하지 않거나, 부검을 하지 않은 사건에서는 상당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정비공이 자동차 정비도중 갑자기 옆으로 넘어지면서 차량정비용 공구박스에 머리를 부딪쳐 약간의 뇌함몰 및 외상에 의한 일부 뇌출혈을 일으키면서 급경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경우가 그렇다. 또는 퇴근 후 아파트 현관 계단에서 쓰러져 뇌경색으로 사망한 경우에 있어 머리 또는 몸이 넘어지면서 다친 것으로 보이는 외상이 뚜렷하게 있는 경우 등은 재해가 사고성인지 업무상 질병에 의한 재해인지 여부를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판단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이 사건에서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실질적으로 쟁점이 된 부분은 재해 이전 뇌경색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만한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존재했느냐 하는 점이다.

피고(근로복지공단)는 기존 질병을 급격히 악화시킬 뚜렷한 과로 및 스트레스 요인이 없었다고 판단하고, 기존 질병(혈관염)의 자연악화에 의해 뇌경색이 발병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건조사 과정에서 망인은 재해발생 직전 일주일 이내 6일간 연속 야근을 했고, 재해발생 3~4개월 전 업무량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는 피고측에서도 부정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피고측 공단 대부분의 자문의는 “업무상 과로요인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는 객관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것인지,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지만 해당 사실과 업무상과로와는 무관하다고 본 것인지 그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사실 공단의 태도는 업무상 질병여부를 판단하는 판정 절차상 심각한 하자가 있다. 관례적으로 공단의 불승인 결정문이나 공단 자문의 소견서를 보면 청구인이 주장한 객관적 과로 사실 존부에 대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결정문에는 자세한 설명도 없이 “뚜렷한 과로요인이 없다”라는 무책임한 판단만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불승인 처분을 받은 노동자 입장에서는 무엇에 대해 이의제기 또는 항소해야 할지 판단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공단 자문의의 소견에서 “과로요인이 없다”는 전제 하에 업무상 과로에 의한 뇌경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와는 반대로 본 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과로 요인이 있다는 객관적 사실만 있다면 업무상 과로에 의한 질병으로 판단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질병을 판단할 때 객관적 과로사실의 존부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고, 그 다음으로 해당 과로가 재해발생의 원인 또는 악화시킨 요인이 되는지 대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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