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 소장)

살다 보면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의 언행이나 흔적을 보고 그 사람의 얼굴이 정말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운전 중에 다른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어기거나 얌체운전을 하면 그 차의 운전자를 한 번 보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왜 보고 싶을까. 이런 언행을 한 자가 과연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 또는 자신이 예상하고 있는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가 아닐까. 한편으로는 그러한 언행을 이해하고자 또 한편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자이기에 그딴 짓을 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12월께 나에게 이러한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어났다.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 버스는 타 본 적이 있을까. 주변에 아는 버스기사가 있을까. 일자리를 잃어 본 적은 있을까.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일까. 그에 대한 궁금증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그 궁금증의 원인은 ‘다음’ 등 각 포털사이트에 게시됐던 다음과 같은 기사 때문이었다.

"버스요금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정당 판결"

"연구보조금 8천440만원 횡령 교수와 대학원생 선고유예 판결"

다수 네티즌들은 위 두 기사를 비교하며 800원 해고 건을 판결한 법원을 성토했다. “천원 훔쳤으면 사형시키겠네”, “수천억을 해 먹은 대기업 대표이사들은 불기소 처분 내리고”, “못된 판사” 등…. 버스기사를 동정하거나 법은 만인에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들이 달렸다.

시외버스 현금운송수입금 가운데 잔돈(동전)으로 커피를 사 먹던 관례가 있던 전북지역 모 시외버스회사가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자 버스에 설치된 CCTV를 일제히 조사해(이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800원을 착복했다고 조합원을 해고했다. 그런데 법원에서 노동위원회 판정을 뒤집고 정당한 해고로 판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잔돈 수입 처리에 대한 관례가 있었는지, 적어도 회사가 잔돈 처리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는지’였다. 운전기사들은 운송수입금 가운데 커피값으로 쓴 잔돈을 제외한 금액을 운행일보에 기재하고 매일 회사에 보고하고 있었다. 해고가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보복인지, 즉 부당노동행위인지 여부도 쟁점이었다.

대부분의 시외버스가 그렇겠지만, 이 시외버스도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정식 터미널이 아닌 곳에서 승하차를 하고 있었다. 이런 간이정류장에서 승차를 하게 되는 경우 승객들이 승차권을 구입할 수 없어 현금으로 요금을 내고 있었다. 간이정류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터미널이 있는 시내까지 가지 못하는 시골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차마 노인들에게 몇 백원 부족하다고 차를 못 타게 할 수 없어 버스회사도 기사도 노인들이 내는 잔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회사 버스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사 관리자가 직접 “그런 잔돈은 자판기 커피나 한 잔 빼 먹어도 된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법원에서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노동위원회 위원들은 “운행구간의 요금과 운행일보에 기재된 현금수입이 상당기간 달랐는데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 그리고 이 사건 이전에 발생한 착복 건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왜 취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다. 회사측은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를 오히려 수차례의 범행이라고 보고 정당한 해고라고 판결했다. 한편 노동위원회에서는 이 사건 해고가 회사측의 보복행위라거나, 잔돈 수입 처리에 대한 관례라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행일보에 납입 금액을 그대로 기재하고 매일 보고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취지로 부당한 해고임을 인정했다.

아니. 관례고 뭐고 800원 커피 사 먹었다고, 수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성실하게 근무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렇게 횡령에 엄격한 법원이 연구비 8천440만원을 횡령한 교수는 “관례”라며 선고를 유예했다. 죄를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고 사람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버스노동자의 노동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런 판결을 했을까.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지금도 800원에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폭발한다. 그러다 이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현실을 푸념한다.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분노와 좌절감이 쌓이면 요즘 트렌드인 ‘힐링’(치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직접 ‘힐링’을 할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