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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119 응급차'도 사치인가
김미영 기자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제목은 환자의 생사를 다투는 마지막 1시간에서 따왔다고 한다. 의학용어로 '골든타임'은 환자의 생존과 직결되는 의학적 처치가 시행돼야 하는 제한시간이다. 이 드라마의 주요 무대가 되는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 골든타임은 1시간이다. 골든타임 이후 치료가 시작된 경우 사망률은 급증하게 된다. 뇌졸증이나 심근경색 같은 뇌심혈관계질환은 3시간을 넘어서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의학적으로 손 쓸 도리가 없어진다.

지난 17일 오전 7시께 현대중공업 사내하노동자 황아무개씨는 탈의실에서 쓰러진 채 동료들에게 발견됐다. 오전 6시40분께 화장실에서 그를 본 동료가 있었으니 쓰러진 시각은 그 이후다. 동료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를 흔들며 깨웠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동료들은 그가 속한 하청업체에 이 사실을 알리고 응급조치를 기다리고 있는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1톤 트럭에 쓰러진 황씨를 짐짝처럼 실어 병원으로 옮겨 진 것이다. 덜컹거리는 트럭 짐칸에서도 그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그는 병원에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던 중인 오전 8시2분께 끝내 눈을 감았다. 사망원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추정)이다. 그의 나이 향년 47세.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 열네살 어린 아들이 유일한 상주가 됐다. 짐짝처럼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남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아내는 아직 장례를 치를 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심장이 뛰고 있어서 트럭으로 옮겼고 병원으로 가던 중에 나름 심폐소생술도 해봤다"고 주장했던 하청업체는 "산재신청 하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황씨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고인이 하청업체 소속이어서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발뺌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은 "119 응급차만 불렀어도 이렇게 황망한 죽음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최성준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장은 고인의 재해조사 자료를 요구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하창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에게 "왜 제3자가 정보 제공을 요구하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사실 조선소에서 트럭으로 산재사고를 당한 노동자를 실어나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건설현장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일주일에 한 건 이상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조선소와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119 응급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관행화돼 있다. 공공연하게 산재은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지난 7월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가 2건의 산재은폐 사건을 노동부에 고발해 1천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바 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도 하청업체 3곳을 대상으로 10건의 산재은폐 사실을 고발해 2개 업체가 처벌을 받았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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