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삶)

파업과 같은 노사분쟁이 있으면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상생’. 기업은 노조에게 같이 살자고 이야기한다. 기업의 경영진이 기업을 잘못 운영해서 재정상태가 안 좋아지면, 노동자에게 같이 살자며 나가 달라고 이야기한다. 밤낮없이 땀 흘리며 일한 노동자는 갑작스런 정리해고 통보에 부당하다 주장하면, 기업은 용역깡패와 경찰을 불러 놓고 상생을 이야기한다. 같이 살자며 기업은 파업하는 노동자를 폭행하고 고소하고 내몰아 버린다.

이런 상생의 질서 ‘창조’에 빠질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경제대통령 치하에 핫이슈로 급부상한 컨택터스. 노사관계에서 '창조'를 알고 싶다면 이들을 보라. 발레오만도·KEC·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SJM·만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에겐 매뉴얼이 있었다. 노조파괴 매뉴얼.

회사는 돌아오는 임단협을 미리 대비한다. 이번 기회에 회사에 '상생'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일련의 과정을 계획해 둔다. 일단 회사는 예전과 달리 교섭에서 비타협 전략을 고수한다. 그래서 단협 결렬을 유도하고 결국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게 한다. 물론 노조는 처음부터 강경한 파업으로 시작하진 않는다. 그동안 극한 대립이 없었고 교섭도 무난하게 이뤄졌으므로, 노조는 이번에 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파업은 부분파업 정도로 그친다.

그런데 회사는 ‘얼씨구나!’를 외치며 냅다 직장폐쇄 신고서를 접수시킨다. 방해배제권을 행사한다는 명목으로 민간군사업체의 군사력을 투입해 청부폭력을 행사한다. 두들겨 패고 날이 선 쇠뭉치 부품을 던지며 노조원을 공장으로부터 완전히 몰아낸다.

그 후 밀려난 노조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산별노조 탈퇴를 강요하며, 준비된 기업노조 설립에 박차를 가한다. 탈퇴한 노조원이나 버티는 조합원에게 기업노조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며 선별적으로 복귀시킨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버틴 노조원들에게는 징계처분·손해배상 청구·가압류 신청을 통해 심리적·경제적으로 압박해 한 치의 오점조차 남지 않는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다.

이 매뉴얼의 핵심은 공격적인 직장폐쇄와 민간군사업체의 청부폭력의 결합이다. SJM에서 나타난 컨택터스의 활약상은 그 정수를 잘 보여 준다. SJM은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다. 자동차 엔진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을 줄여 주는 ‘벨로우즈형 신축이음쇠’ 생산을 담당하는 회사다. 세계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보이고 현대-기아차 소요물량의 80% 가량을 공급하고 있다.

그런 SJM의 대표이사는 아들에게 ‘상생’의 질서가 살아 있는 ‘깨끗한’ 기업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교섭이 결렬되고 노동쟁의가 발생하기 이미 두 달 전에 컨택터스로부터 견적서를 받았다. 그리고 직장폐쇄를 신고하기 하루 전 컨택터스와 용역계약을 체결한다. 계획된 청부폭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건 컨택터스의 청부폭력이 있던 날 경찰의 방관과 위법 여지가 있는 직장폐쇄 등에 대한 안산노동지청의 우유부단한 태도였다. 일부 매체에서는 ‘관작업’(기업이 청부폭력에 돌입하기에 앞서 관계기관들에 뇌물을 주고 매수하는 행위)의 정황을 포착했다.

사건이 있고 석 달이 다돼 가는 이 시점까지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모호한 태도로 해결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SJM과 만도의 직장폐쇄와 용역폭력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 조사활동의 일환으로 안산노동지청의 근로감독관을 면담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는 사업주의 쟁의행위가 명시돼 있고 그것을 폭력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근로기준법상 어떠한 이유로도 사업주는 근로자를 폭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검토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업주의 위법 여지가 있는 공격적인 직장폐쇄와 민간군사업체를 동원한 청부폭력을 '법 절차'를 명분으로 비호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법 제도를 바꿔 달라. 그럼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경찰이나 노동부도 ‘상생’의 신질서 ‘창조’에 기여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그리고 조사단의 일원으로 과정에 동참하며 착잡한 심경이었다. 법률가는 법률분쟁이 있어야 생계가 유지된다. 그 말은 누군가 불행해져야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부류는 분쟁을 생산해 내기도 한다. 소위 ‘창조’하는 전문가들이다.

SJM 청부폭력 사건에서 컨택터스만 지나치게 부각됐는데, 그 이전부터 유사한 매뉴얼에 따라 청부폭력과 민주노조 파괴가 이뤄진 기업들에는 ‘기획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계획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분쟁,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민간군사업체를 불러들인 청부폭력과 그에 이은 기업노조 설립. 그 결과 ‘상생’의 ‘창조’가 이뤄졌다. 아무리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유사하게 진행된다.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지점이다.

내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누군가를 일부러 불행에 빠뜨리는 일은 법률가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창조’하는 당신들은 지금 조각칼을 들고 사람을 찔러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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