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민주노총 직선제와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중요한 현안이고 전략적 과제들이지만 과잉열기다. 사실 직선제나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보다 더 중요한 조직적 과제인 비정규직 조직화에 대해서는 이런 격정적인 논쟁이 벌어진 적이 내 기억엔 없다. 지난 11일 노동자대투쟁 25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하나로 진행된 ‘비정규직 전략조직화와 조직문화 혁신’ 토론회에는 발제자·토론자수와 엇비슷한 10여명만이 방청했다. 가장 중요한 과제인 비정규직 전략조직화가 민주노총 산하조직 내에서 어떤 관심을 받고 있는지 이보다 더 아프게 보여 줄 순 없다.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 정치과잉이 일상화된 분위기에서 간과되고 있는 게 비정규직 전략조직화의 의미다.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으로 형성된 노동시장 양극화 시대에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남성·내국인 노동자 중심의 조직구성으로는 계급 대표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특히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 노동자의 90%가 100인 미만 사업장에 편재돼 있는 조건에서 이 미조직노동자군을 조직하지 않고는 정규직 고용안정조차도 중장기적으로 지켜 내기 어렵다. 더 나아가 노동운동의 침체가 장기화돼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계급주체 형성의 핵심이 미조직된 비정규·중소영세·이주노동자들이다. 따라서 이 미조직군을 집중 조직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비정규직 전략조직화는 노동운동의 총체적·전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출구전략이면서 노동운동의 미래를 담보하는 생존전략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을 관통하는 가장 큰 문제는 총연맹의 전략적 마인드 부재다. 1기보다는 2기에 사업담당자의 고군분투로 성과가 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여러 사업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어 ‘전략’ 사업의 의미가 거의 유실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략의 의미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사업을 선정해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조직이 가진 자원을 전방위적으로 배치하고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장기사업으로 일관된 목표와 방향·기조를 유지해 소기의 성과를 반드시 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2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전략조직화 두뇌인 총연맹 지도부의 소극적이고 불철저한 인식으로 인해 현재 전략조직화라고 부르기 난망한 상태가 됐다.

전략조직화 사업이 정상화되려면 가장 먼저 총연맹 차원에서 전략조직화의 의미와 중요성을 확고하게 재인식해야 한다. 기존의 관성과 사업작풍을 혁신하지 않고는 전략조직화 사업의 위상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1인 실무 전담체계로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 조직화를 총괄하고 집행 전체를 책임지는 구조는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총연맹의 관심 정도가 어떤 것인지 반증하는 것이다. 전략조직화 사업이 구두선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위원장 또는 비정규직 사업 담당 임원이 조직의 명운이 걸린 사업으로 설정하고 수미일관하게 과정을 점검하고 집행을 총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략조직화 성패는 선택과 집중에 달려 있다. 이후에는 조직화 대상을 여러 곳으로 나누지 말고 한 지역, 또는 한 업종과 부문을 특정해 조직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그럴 때 총연맹 직할 체제로 추진하고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고 사업에 대한 관장력을 배가하면서 책임소재도 분명히 할 수 있다. 총연맹 내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전략조직화 센터를 구성하고 해당 산별과 지역본부를 아우르는 단일한 사업집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능한 활동가그룹과 기획·정책 지원 전문가그룹도 네트워크로 묶어 전략조직화 센터로 포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실행되지 못하고 미뤄져 온 비정규직 관련 사업예산 30% 확보를 위한 계획이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 비정규직 관련 예산 증대가 또 한 번 구두선으로 그치면 어떤 조직문화 혁신도 용두사미로 그칠 수밖에 없다. 각고의 노력 끝에 추진돼 온 의미 있는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이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절실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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