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지난달 3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순천향병원(통합)노조 위원장의 해고무효확인 청구사건의 선고가 있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재판장의 입만을 바라봤다. 결과는 예상대로 승소였다. 1심을 뒤집고 해고가 무효임을 확인한 것이다.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한다.”

얼마나 감격에 겨웠던지 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당사자인 최재준 위원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2010년 11월1일자로 해고된 후 만 22개월 만에 나온 복직 판결이었다. 그리고 이번 판결은 위원장 개인이 당한 해고에 대한 고등법원이 내린 명료한 법률해석 이상의 의미가 있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하고 복수노조 간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노동현장에 얼마나 많은 혼란과 소모적인 분쟁을 불러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법리적으로는 단협에서 정한 조합원의 범위에 관한 해석기준을 명확히 한 데 의의가 있다. 다수의 단협에서 이른바 조합원의 범위를 정하고서 정작 분쟁이 발생하면 그 해석은 각자 달리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여러 사건 해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최재준 위원장에 대한 해고사유는 “75일간 무단결근”이었다. 과장급인 최 위원장은 비조합원인데도 전임활동을 하면서 결근했다는 것이다.

고등법원은 단협에서 조합원 범위를 정한 취지는 “노조법상 참가가 금지되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으므로 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기준일 뿐”이라고 그 의미를 제한했다. 순천향병원 단협에서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자에 대해 “과장급 및 이에 상당하는 자”로 명시한 것을 두고 법원은 “과장 및 이에 상당하는 직위를 보유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그에 상당하는 ‘직급’만 부여받고 구체적인 ‘직위’를 부여받지 않은 최재준 위원장의 조합원 자격은 인정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더 많은 쟁점이 있지만 후일로 미루기로 하고, 이글에서는 먼저 이 사건의 책임을 져야할 자들을 고발하고자 한다. 당사자 주장을 충분히 듣고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본 법원의 혜안에는 큰 감사를 하고 싶다.

가장 큰 책임은 회사에 있다. 최 위원장은 6차례 단사 위원장과 2차례 상급단체 위원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간 협조적인 노사관계로 이름이 높았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노조가 나서서 회사를 구했다. 아니 사세를 확장하는데 맨 앞줄에서 앞장선 자다. 그런 그를 새로운 경영진은 뒤돌아 보지 않고 내팽겨 쳤다. 탄탄하던 노조를 갈라놓았다. 그렇게 해 지금 얻은 결과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다음으로는 노동위원회를 꼽는다. 노조는 “구체적인 직위를 부여받은 사실이 없고 회사의 처분은 새로운 경영진이 자행한 부당노동행위 연장”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의심이 없었다. 전임자 신분이 아닌 자가 무단결근한 것은 명백한 해고사유라고 했다. 오직 사측의견만을 진실인 냥 인정했다. 사측 대리인의 주장으로 판정문을 도배했기 때문에 그 의심은 더 커졌다. 이러한 판정에 누가 수긍하겠는가. 노동위가 노동자들로부터 비판받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또한 대리인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 노사대립의 악화에 특정 대리인이 사측을 자문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지난 수년간 각종 굵직한 노사분쟁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리는 노무법인이 있다. 최근 각종 언론에서도 끊임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고등법원 판결문에는 같은 노무법인이 최재준 위원장의 해고를 포함해서 순천향병원 노무관리 전체를 자문하고 있다고 확인해 주고 있다.

물론 전문가로서 본연의 업무에 적극적인 모습까지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조언가로서 노무 전문가는 노사관계가 발전하는데 기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손을 대는 사건마다 노사가 분열되고 급기야 회사가 문을 닫기까지 한다면 그 방향을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원인 제공자는 바로 노조법이다. 복수노조와 창구단일화제도가 주범이다. 사용자는 아직도 위 제도가 주는 매력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해 7월1일 복수노조 제도 시행을 앞두고 순천향병원이 기존 노조를 등한시하기 시작한 것은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이 됐다. 실제 창구단일화제도 시행 이후 순천향병원 노사에는 송사가 끊이지 않는다. 형사·민사·행정 가릴 것 없다. 최근에도 병원장 등은 부당노동행위 재판을 받는 중이다. 법·제도가 그 주범이라는 명백한 증거다.

고용노동부는 훌륭한 지원자였다. 한 순간의 유혹에 노사관계는 엉망이 됐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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