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통합진보당은 진보를 통합해 내지 못하고 기어이 분당된다고 시끄럽다. 민주통합당은 민주로 통합했어도 대선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안철수를 불러 와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진보신당은 진짜 진보로 재창당하겠다고 하고 발버둥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겠다고, 그래서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실패를 교훈삼아 제대로 된 노동자·민중의 당을 만들겠다고 토론하고 있다. 또한 노동단체들도 어떤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토론하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민주와 진보, 그리고 노동을 내세우고서 당을 만들어서 권력을 차지하겠다고 난리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진보와 민주를 내세우는 몇 개의 당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들 중 어떤 당을 지지하라고 다시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실패의 기억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추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세력이 이번에는 자신의 최저강령으로 타협해서 최대한 통합할지 모른다. 그러면 이제 바야흐로 오매불망 꿈꿔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이 나라 노동자는 만세를 불러야 할까.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는 노동운동은 아무리해도 민주와 진보, 그리고 민중, 나아가 민족의 틀을 넘어설 수 없다. 이 나라에서 사회운동은 이 틀로 해서 전개돼왔고 거기서 노동운동은 그 부문운동이었다. 그러니 노동운동이냐 아니냐로 구분되지 않고, 엔엘이냐 피디냐, 민족문제를 앞세우냐 민중생존을 앞세우냐로 구분돼서 세력을 형성해왔다. 운동의 모든 것은 거기로 수렴되고 만다.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세력을 모으고 결국 권력을 차지할 것이냐로 수렴된다. 민중운동세력이라 부르든, 진보운동세력이라 부르든 지금까지 운동의 관심은 그 세력을 모아서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서 지금 다시 당을 만든다고 난리다. 지금 이 나라에서 정당은 권력을 향해 인민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이기 때문이다.

2. 맑스는 상품에서 이 세상을 봤다. 가장 기본 단위에서 작동하는 원리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 세상에서 권력의 질서도 그렇다. 권력의 원리는 가장 기본 단위까지도 작동한다. 상품의 생산이 ‘자본이 노동을 생산과정에 결합시켜 내서 자본을 재생산하는 과정’이라면 정치과정은 ‘권력이 인민을 자신의 질서내로 복종시켜 내서 결국 권력을 재생산하는 과정’이다. 자본의 재생산은 구매된 노동을 지배함으로써 그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고서 그것을 자신이 차지함으로써 확보된다. 지금 이 세상에서 권력의 재생산은 선거 등 제도로 이뤄진다. 그 제도에 인민을 복종시킴으로써 생산된 권력에 대한 인민의 권한을 박탈하고서 그것을 차지함으로써 권력의 재생산은 확보된다. 자본의 재생산과정이 노동의 생산물에 대한 권리의 박탈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라면, 권력의 재생산과정은 인민이 스스로 주인될 지위의 박탈을 통해서 실현된다. 이때 선거 등 이 세상의 민주주의제도는 인민이 스스로 주인될 지위를 박탈시키는 제도로 기능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인민은 주인이 될 것을 포기하고 대표가 권력자가 되도록 승복하게 된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권력의 재생산 기술이 된다. 자본이 상품 생산을 통해서 확대·재생산되는 것처럼, 선거 등 민주주의과정을 통해서 더욱 인민에 대한 지배가 강해지는 권력의 확대·재생산이 실현된다. 권력의 가장 기본 단위조차도, 사람과 사람이 결합해서 사람에 대한 지배가 행사되는 곳이라면 그것이 노동조합이라도 권력의 원리는 이렇게 작동하고 있다. 그것으로 인민은 스스로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권력자는 주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자신의 것으로 세워 내지 않고는 이 세상에서 민주주의 과정으로 인민에 대한 권력의 지배가 강해질 뿐이다. 복지 등 인민을 위해서라고 하든, 노동권 등 노동자를 위해서라고 하든 뭔가를 내걸고 권력이 지지해 달라 하고 그래서 인민이 투표소에 갈 때마다 강해진다. 자본주의경제를 분석하기 위해 맑스는 상품에서 자본의 세상을 봤다지만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노동자는 권력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디서라도 언제라도 권력에 노동자·인민의 이름이 붙어 있대도.

3.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이다. 여기서 국민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인민을 말한다. 인민주권이니 국민주권이니 뭐라고 대한민국 헌법을 논한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최고권력은 인민에게 있고 어떠한 권력이든 인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만약 이걸 부정하고서 대한민국에서 권력이 나오고 행사된다면 그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부정이다. 그러니 인민은 그 권력을 부정하고서야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수호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걸까. 대통령이 필요할 때 부의하는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하고(헌법 제72조),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들이 제안해서 국회에서 의결한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하고(헌법 제130조), 대통령(헌법 제67조)·국회의원(헌법 제41조) 등 행정과 입법의 최고권력자들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를 한다고 그런 걸까. 그럼 선출된 권력자가 모든 권력을 행사해도 인민은 자신이 선출한 자의 행위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조문을 뿌듯하게 읽으면서, 내게서 나왔다며 민주공화국 만세를 불러야 한다. 그리고서 그저 헌법이 선언한 대로 국민을 위해서 행사되기를 지켜보면 된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도 권력자도 당연히 그렇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을 차지하겠다고 당을 만들어 출사표를 던지는 민주·진보진영도, 나아가 노동운동도 그렇다. 그렇게 알고서 인민의 지지를 받아서 그렇게 하겠다며 지금 난리다.

4. 지금 세상에서 경제가 자본의 일이라면 정치는 권력의 일이다. 정치는 경제의 종속변수고 부수적인 것으로 본다면 정치의 일이야 인민을 위한 경제가 되도록 하는데 복무하면 그만이다. 그저 정치는 선출된 권력자의 것으로 남겨 둬도 그만인 것이 된다. 그러나 결코 정치는 그저 경제의 종속변수도 아니고 인민에게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는 인민이 주인되는 일, 권력을 부정하고서 민주주의를 실현해 내는 인민의 일이어야 한다. 그러니 정치를 선출된 권력자의 것으로 남겨 둬선 안 된다. 단순히 국가권력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당권력, 노조권력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어디서도 정치가 인민의 일은 아니다. 그리고서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한다. 지금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그저 노동자의 지지로 노동자대표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조차도 민주니 진보니 하면서, 그리고 민중과 민족이라는 틀로 전개해 왔던 운동진영의 정치세력화의 일부로 말이다. 노동자·권력·정치·민주주의 등. 이런 것들을 노동운동이 내세운다면 먼저 노동자에게 그것을 물어야 한다. 노동자의 권력은 어떠해야 하는 건지. 노동의 권력은 어떻게 재생산돼야 하는 것인지. 노동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소멸시켜 낼 것인지. 만약 노동운동이 노동자에게 이걸 묻지 않는다면 그래서 무작정 권력으로 달려가야 하는 게 노동자 정치세력화라고 한다면 이제 노동자가 노동운동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가 스스로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해 낼 것이냐. 그리고 노동자는 노동자대표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민주주의는 권력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부정하고서 서 있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지금 노동운동은 아직 어떠한 대답도 말하지 않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