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회적으로 성폭행 가해자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사건은 반대로 가고 있다. 법원조차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사용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등 15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피해노동자 지원 대책위원회'는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은 성희롱과 부당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피해에 대해 현대차와 하청업체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입은 하청노동자 박아무개씨는 지난해 3월 가해자 2명과 원청 사용자인 현대차, 하청 사용자인 금양물류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6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에 법원은 지난달 17일 가해자 2명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원·하청 사용자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책위는 "이번 판결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서 인정하는 양벌규정을 무시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을 용인한 대표이사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옴과 동시에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법인의 대표자나 사용인, 종업원이 위반행위를 하면 법인에도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양벌규정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또 "피해자는 지난 14년간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현대차가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는데도 법원은 원청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편 박씨는 2009년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인 금양물류에서 일하다 소장과 조장으로부터 수차례 언어적·신체적 성희롱을 당하고, 이를 국가인권위원에 진정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지난해 1월 국가인권위는 박씨의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고,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금양물류 사장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며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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