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기훈 기자

민주노조 깃발 아래 뭉치는 것만으로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민주노조운동은 부흥기를 맞았고 민주노총이란 조직적 결실을 낳았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오늘.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은 초라하다. 과거 20%에 육박했던 노조 조직률은 2011년 현재 10.1%에 머물러 있다. 전체 노동자를 대변해야 할 민주노총은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만을 위한 조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내부 민주주의가 훼손될 정도로 정파갈등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노조운동의 총체적 위기인 셈이다.

노동계 안팎으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을 받고 있는 민주노총이 ‘87년 노동자대투쟁 25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다. ‘그땐 그랬지’라며 화려했던 과거에서 위안을 찾고자 함이 아니다. 노동자대투쟁을 되돌아보며 민주노조운동이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에 대해 묻기 위해서다. 민주노총은 이달 10일부터 나흘간 진행되는 심포지엄에서 산별노조운동을 비롯해 비정규 노동운동·진보정당 운동 등을 점검하고 향후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제 등을 도출한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31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는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을 만났다. 그는 심포지엄의 취지를 묻자 대뜸 반성부터 했다. 김 원장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역사적 계승자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그동안 노동자대투쟁을 제대로 기념하지 못했다”며 “노동자대투쟁의 정신을 되살리면서 현재의 상황을 차분하게 성찰·반성하고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심포지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부터 해야 하는 법. 김 원장은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상황을 ‘난파된 배’에 비유했다.

“상당히 큰 배가 암초에 부딪쳐 파손됐다. 물이 새어 들어와 배의 한쪽이 잠기기 시작했다. 물에 빠진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들도 생겼다. 그런데 배의 또 다른 한쪽에 있는 사람들은 물이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괜찮다'며 안일하게 있다. 지금의 민주노조운동이 그렇다.”

그는 만도를 예로 들며 말을 이었다.

“현장의 민주노조운동이 엄청나게 망가졌다는 게 이미 드러나지 않았나. 만도를 비롯한 금속의 대공장들이 하나씩 무너져 가는 게 확인되고 있는데도 ‘아직은 괜찮다’고 말하는 현장 활동가들이 적지 않다. 심각한 문제다.”

김 원장은 위기의 원인을 ‘정파갈등’에서 찾았다. 그는 “통합진보당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정파갈등, 정파 패권주의 문제는 민주노총도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정파갈등 때문에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위기의식조차 공유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노동운동을 모색하려면 위기의식부터 공유해야 한다. 특정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운동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함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는 산별노조운동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의 양대 전략 중 하나였던 진보정당운동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일각에서 ‘몸 대고 돈 대는 운동이었다’는 혹평까지 나온다. 노동조합 자체의 대중적 정치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노동조합 스스로가 현장에서 정치간부를 양성하고 그들이 지역과 현장에서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벌여 나가면서 정당과 결합하는 형태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정치세력화를 할 수 있다.”

김 원장이 이번 심포지엄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일까.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87년 당시 운동했던 조합원들이 아직도 적지 않게 현장에 남아 있다. 그 시절 동지들은 어느새 40~50대 중장년이 됐고, 생활인이 돼 버렸다. 무뎌졌다고나 할까. 그 시절 감격을 되새겨 보면서 현재 노동운동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성찰하고 고민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