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수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차장)

97년 IMF 외환위기, 2007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쳐 기업 구조조정이 현재진행형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구조조정은 때로는 대량감원의 방식으로, 때로는 기업조직 변경으로, 또는 양자가 혼합된 방식으로 이뤄졌다. 구조조정을 행한 상당수 기업에서는 성공적으로 이뤘다고 이를 자축하는 분위기이고, 아직도 추가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여지가 없는지 극한의 계산을 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자다.

각종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졌다시피 올해 들어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만 3번째이고,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22번째다. KT에서는 2009년 이석채 회장이 취임한 이래 14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09년 파업으로 인해 해고된 철도노동자는 지난해 말 해고로 인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공황장애를 호소하던 기관사 노동자도 지난 6월에만 2명이 투신자살을 했다. 이 외에도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 다수의 노동자들이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목숨을 잃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고와 구조조정은 나간 사람에게도 남은 사람에게도 살인이었다. 왜?

지난해 한 노동건강단체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중증 우울 및 고도 우울과 관련해 심리상담이 필요한 집단이 사무금융연맹과 서비스연맹에서 약 26%로 집계됐다. 반면에 대량 구조조정을 실시했던 KT 및 자회사에서는 약 75%에 이르렀다. 표본설정과 검사방식에 다소 오차가 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치는 구조조정이 실시된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고도의 우울증에 노출된다는 점에 확신을 갖게 한다. 이대로 좋은가. 망자들 개인의 문제인가.

일각에서는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를 ‘기업살인’으로 규정하고 ‘기업살인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요구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사업장에서 사망사고의 실제적 무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노동안전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움직임이라 생각한다. 다만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구조조정 등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자살행렬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자살을 예방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판례를 보면 고용관계에서 고용인은 피고용인이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환경을 정비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보호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대법원 1997.4.25 선고 96다53086 판결).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서는 노동자의 생명·신체·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예방적 차원에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산안법에서는 노동자에게 노출되는 정신질환 중 정신분열증과 치매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 그것도 ‘질병자의 근로제한’으로만 다루고 있을 뿐 스트레스로 인한 중증·고도의 우울증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

사회적 안전망은 별론으로 한다 하더라도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노동자에게 최소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기업의 비용으로 진행하도록 의무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자들이 죽음의 행렬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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