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인간이 천사라면 정치는 필요 없을 것이다. 천사에게 정부를 맡길 수 있다면, 정치 이외의 삶에서 인간의 열정을 발휘하는 것으로 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들만 정치를 하게 만들 수도 없기에, 정치는 평균적 인간이 가진 한계 위에서 기대와 실망, 갈등을 동반하면서 실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가 정치의 일을 감당해야 할까.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람과 좋은 시민-정치가가 일치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우선 그는 이상적인 정치체제에서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러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이 시민-정치가를 하는 것과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시민-정치가로서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가' 하는 질문을 다시 던질 수가 있다고 하면서, 그는 좋은 사람일지라도 시민-정치가로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것보다 사람의 좋음과는 상관없이 시민-정치가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답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이 개인의 책무라면 공동체를 잘 가꾸는 일은 공통의 책무이기에, 좋은 통치자가 되고 동시에 좋은 피치자가 되는 정치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시민이 번갈아 통치에 참여했던 아테네 민주주의와는 달리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독립된 직업이 됐다. 따라서 정치의 과업을 맡는다는 것은 과거와는 다른 행위규범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게 됐는데, 이 문제를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파고든 사람이 있다면 단연 막스 베버다. 현대 정치는 그 이전과는 달리 한 사회의 인적·물적 자원을 통제하는 거대한 관료제 국가에서 이뤄진다. 그 속에서의 정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속하는 대규모 권력 현상을 동반하는데,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가능케 하는 힘이면서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강제하는 조직적 물리력을 본질로 한다. 결국 정치가는 강제력이라는 “악마의 무기”를 손에 쥐는 일을 피할 수 없는 바, 그의 정치행위가 갖는 윤리성을 착하고 옳고 바른 도덕적 삶에서 찾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정치는 선악의 기준과는 다른 별도의 차원을 갖는데, 그것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치의 과업이 있고 그 일을 잘 하는 것을 통해 결과적으로 좀 더 선한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동체적 조건을 진작시키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버는 정치가가 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나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업”을 추구하는 일로 비유했다. 나아가 권력이 주는 유혹에 무너지지 않도록 내적으로 단단해짐과 동시에 외적으로는 거대한 관료제를 움직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베버가 이런 정치관을 말했던 당시의 독일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민주화 초기였다.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권위주의적 반동이 도래할 것이라고 걱정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끊임없는 분열을 반복하는 사회민주당의 “프티부르주아적 멘탈리티”에서 찾았다. 그것은 두 요소를 갖는다. 하나는 “리더십의 역할에 대한 부정”이고 다른 하나는 “옮음의 윤리를 앞세우는 것”에 있었다. 모두가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앞세웠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정당을 어떻게 잘 운영할지, 규율과 리더십의 역할을 어떻게 잘 제도화할지, 이견을 조정하고 당내 다원주의를 어떻게 뿌리내리게 할지와 같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업”을 위해 집합적 에너지를 모으려는 노력보다, 왜 내 생각대로 안 하냐고 서로 화만 내고 그 탓을 남에게 전가하는 일을 계속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자신들의 멘탈리티는 붕괴됐고 나치즘은 급성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치의 윤리성은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드는 과업을 얼마나 잘 했는지,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응”해서라도 그 과업을 성취하는 데 얼마나 적극적이었고 유능했느냐에 있지,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들이 얼마나 나쁜가를 말하며 욕보이고 자신의 옮음을 과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자족하는 데 있지 않다. 좋은 뜻을 세웠다면 부디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parsh0305@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