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87년생으로 2008년 9월께 육군에 입대해 복무 중 소위 작업병으로서 생활관·휴게실·테니스장·축구골대 등 부대 내 거의 모든 시설에 대해 수리·보수하는 업무를 맡았다. 작업을 하면서 상시적으로 페인트를 사용해 칠하는 작업을 했다. 페인트 작업을 위해 희석제인 시너를 항시적으로 사용했으며, 작업시 별다른 보호구 없이 근무했다.

원고는 2010년 6월께 맹장수술을 위한 혈액검사 중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고 같은해 8월1일 의병전역을 했다. 이후 안동보훈청에 국가유공자등록신청을 했으나 거부 처분됐다. 원고는 당시 군인연금법에 의해 전역시 비전공상처분을 받았다가 이후 공상처분을 받은 이후 국가유공자등록신청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보훈청은 군인연금법 또는 공무원연금법상 처분에 구속되지 않고 별개의 처분, 즉 공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고 있다. 이는 대법원에서 인정되고 있는 사항이다.

2. 사안의 쟁점

이 사건 사안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고민했던 바는 결국 입증의 문제였다. 일반 노동자와 달리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나 작업환경측정 결과 등 유해물질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고 역학조사도 이뤄지지 않는 군인의 공무환경의 문제였다. 이는 법률상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6호에 있어 ‘공상군경’의 입증여부다.1)

두 번째는 사용한 유해물질에서의 발암성 여부였다. 결국 이는 원고가 군복무시절 상시적으로 사용했던 시너의 발암물질 즉 벤젠의 포함여부였다.

3. 판결의 요지

대구지방법원은 “원고는 군에 입대하여 페인트 칠 작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노출된 벤젠 등이 원고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발병케 하였거나 적어도 원고의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되어 그 발병을 촉진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함이 경험칙에 부합한다”라고 했다.(대구지방법원 2012. 7. 6.선고 2011구단1288판결)

4. 판결의 의의

가. 공무기인성 및 업무기인성 대법원 판례의 동일성

법원에서 사용·판단하는 공무기인성이라는 논리는 공무원의 공무상 질병 소송뿐만 아니라 국가유공자소송에 있어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일반 근로자의 ‘업무상 질병 소송’에 있어 ‘업무기인성’의 인정논리와 동일하다.

이 사건에서도 이러한 내용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7. 9. 6. 선고 2006두6772판결)을 인용하고 있다.

즉 법원은 공무기인성이나 업무기인성 소송 사건에 있어 ‘상당인과관계론, (원고) 입증책임론, 법률판단론(의학적·자연과학적 명백성 배척), (기왕증) 악화·발현론, 당사자 기준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나. 백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판결례와 당해 사건의 비교

법원은 백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여부에 대해 수차례 판시한 바 있다. △제철소 근무 중 급성골수성백혈병(대법원 1997. 2. 28. 선고 96누14883 판결) △타이어회사에서 근무 중 발병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제약회사 연구원에서 발생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서울고등법원 2006. 8. 18. 2003누14293판결) △항공회사 판금 및 제작 업무에 종사하던 중 발병한 급성 림프구성 벽혈병(서울고등법원 2007. 9. 5. 선고 2005누10615 판결) △인쇄업무 종사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서울행정법원 2008. 11. 28. 선고 2007구단14445판결)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2011년 소위 삼성백혈병 사건에서 서울행정법원은 “비록 망 황○○에게 발병한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의 발병 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망 황○○가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근무하는 동안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망 황○○에게 발병한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과 그 업무와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했다.(서울행정법원 2011. 6. 23 선고 2010구합1149 판결)

림프조혈기계 암은 백혈병과 림프종으로 구분되며, 백혈병은 다시 임상소견·검사소견 및 경과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된다. 이 중 업무기인성이 문제가 됐던 사안은 거의 ‘급성골수구성백혈병’이나 비호지킨림프종이다. 이런 상병들은 벤젠·전리방사선 등 IARC(국제암연구소)에서 백혈병 유발물질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상병이다. 그러나 IARC에서도 이 사건 원고의 상병인 ‘만성골수성백혈병’과 ‘벤젠’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 아니다. 직업병학 교과서에서도 명확한 관련성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종양학 교과서에는 관련성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법원에서는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던 중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한 판결(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및 고용노동부에서 벤젠 노출사실을 인정해 2차례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

다. 당해 판결의 구체적 의의

이 사건 판결은 백혈병의 구체적 공무기인성을 판시한 최초 판결이라는 점 이외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첫째, 국가유공자소송에 있어서 백혈병의 공무기인성 법률판단의 원칙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 사건 사안에서도 직업환경의학 감정의는 (의학적) 인과관계를 사실상 부정했으나 법원에서는 (법률상) 상당인과관계론의 입장을 취했다.

이로 인해 법원은 원고가 사용한 시너에서 검출된 벤젠뿐만 아니라 디클로로메탄의 ‘발암성’을 인정했으며, 발암물질 간의 ‘상가 작용’을 추정했다. 즉 법원은 디클로로메탄이 비록 2급 발암물질이기는 하나 의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 발암성 부정의 논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시 논리는 업무기인성 판결에 있어서는 예외적으로 판시하는 사항이었다.

즉 삼성백혈병 사건에 있어 서울행정법원은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비록 그 화학물질이 백혈병을 발병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에 대한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기인할 수도 있어 의학적·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하여 백혈병의 발병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라고 한 것과 동일하다. 또한 방사선 피폭에 의한 췌장암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한 판결에서는 "방사선 피폭과 췌장암이 관련 없다는 확실한 의학적 근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방사선에 피폭된 사실이 명백한 근로자를 더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한 바 있다.(서울고법 2007. 12. 21. 선고 2007누 1226판결)

둘째, 법원이 군복무 중 발생할 수 있는 조혈기계 암 등을 포함한 암 사건에 있어 공무기인성의 인정 지표를 넓혀 제시한 것이다. 즉 법원은 ‘원고의 노출기간이 1년 8개월 정도인 점, 입대 전 건강하였던 점, 작업시 상시적으로 벤젠 등에 노출된 점’ 등을 근거로 “원고의 만성골수성백혈병이 군 복무 중 벤젠 등에 노출되었다는 원인 이외에 다른 원인에 의하여 발병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다”라고 판시한 것이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는 달리 공무원연금법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공무상질병, 특히 암의 공무기인성의 구체적 조건이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긍정적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구체적 조건을 시행령과 별표에서 규정하고 있고, 구체적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오히려 직업성 암의 업무기인성을 부정하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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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상군경(公傷軍警): 군인이나 경찰·소방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질병을 포함한다)를 입고 전역하거나 퇴직한 사람으로서 그 상이정도가 국가보훈처장이 실시하는 신체검사에서 상이등급으로 판정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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