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
사무소 새날 대표

1. 폭력이 날뛰고 있다. 노동현장은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 자본의 지배에 맞선 노동의 투쟁이 아니다. 노동현장은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권력의 횡포에 맞선 노동의 항거도 아니다. 자본과 권력의 거대한 합법적 폭력에 맞서 생존을 위한 노동의 불법적 폭력이라고, 감히 그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다. SJM에서 무장한 경비용역이 노조원을 폭행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보안팀과 경비들이 비정규직 노조원을 납치, 폭행했다. 노동현장에서는 자본의 폭력이 날뛰고 있다. 자본이 구매하고 자본이 고용한 폭력이 노조를 짓밟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자본의 폭력을 방관하고 묵인했다. 폭력을 오로지 자신의 것이라고 선언해 온 국가권력은 방치하고 있다. 경비업법 위반을 제때에 단속하지 못하고, 형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의 범죄행위를 제대로 예방·진압 및 수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이 나라에서는 자본의 폭력이 지금 노동자를 진압하고 노조를 무찌르고 있다. 이 나라에서 자본의 폭력은 권력의 방관과 묵인으로 노동에 무자비하게 행사되고 있다.

2. 폭력을 자신의 것으로 해서 폭력의 조직인 무력을 보유하고서 국가는 탄생했다. 폭력이 사적 소유로 남아 있는 한 아직 국가는 완전할 수 없었다. 소유가 계급을 갈랐다면 폭력은 권력을 갈랐다. 물론 인간의 역사에서 물적 지배를 가지고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폭력을 가지고서 물적 지배를 행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대국가는 물적 지배와 폭력의 엄격한 분리를 법적으로 선언하고서 등장했다. 이에 따라 사적 소유의 물적 지배와 구분돼서 폭력은 공적 소유, 국가의 것으로 선언되고 관리됐다. 그리고 이 세상의 질서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힘, 폭력으로 강제된다. 세상의 질서는 법으로 선언됐고 그 위반은 국가의 힘으로 규제됐다. 폭력은 물적 지배와 분리돼서 국가권력의 것으로 질서의 힘이 됐으므로, 법의 위반은 자본과 노동을 가리지 않고 국가권력의 규제가 가해진다고 선언했다. 자본의 세상, 근대국가에서 질서는 자본의 물적 지배를 보장하고 재생산하는 질서다. 근대국가의 권력은 그 질서의 수호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공식적으로는 중립의 선언으로 해서 정당화될 수 있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은 선언했다(제1조 제2항). 그리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제1조 제2항),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한(제1조 제1항) 대한민국에서 국가권력은 이런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권력은 공적 권력인 것이고 자본의 권력일 수 없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그렇게 선언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 자본의 폭력이 경찰의 방치와 묵인 아래서 행사되고 있다. 이때 경찰력은 공적 권력, 즉 공권력임이 분명한데 무슨 ‘관작업’의 대상으로 전락해서 이러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적 권력일 수 없다. 자본의 관작업의 대상이 돼서 자본의 폭력을 방치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자본의 사권력일 뿐이다. 그건 근대국가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서 국가의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봉건국가든 근대국가든 국가라면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하는 것을 자신의 윤리로 했다. 그러니 권력의 불공정한 행사는 언제나 그 권력이 행사되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했다. 공명정대는 근대국가의 윤리이기 이전에 봉건국가의 윤리였다. 그것은 폭력을 자신의 것으로 해서 세워진 국가 일반의 윤리였다. 그래서 지금 SJM에서, 현대자동차에서 경찰의 법집행을 비난한다고 해서 자본의 세상을 비난하는 것일 수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공명정대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공권력의 행사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공명정대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경찰이 자본의 사권력으로 전락한 거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3. 공권력은 공명정대하게 행사돼야 한다. 이것을 누구는 공정사회라고 하고 누구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고 한다. 누구는 거창하게 “평화 위에 세우는 공정한 복지국가”를 말한다. 대권을 차지하겠다는 예비후보들은 다투어 이 나라에서 국가권력이 공정하게 행사돼야 한다고 그런 국가를 세우는 것이 자신의 기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공권력은 공정하게 행사돼야 한다. 그것은 노동과 자본 사이에도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의 제정에서도, 법의 집행에서도 권력은 그렇게 행사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이 자본의 세상이라는 것과 별개로 권력은 그렇게 행사돼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으로 이 자본이 확대재생산되는 세상의 질서는 국가의 질서로 존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권력의 공정한 행사를 당연히 전제하고서 이 세상의 법질서가 세워졌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투쟁은, 노동기본권의 행사는 이러한 공권력으로 보장되고, 노동현장의 불법은 규제됐다. 그것은 국가의 중립의무라고 했다.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는 이 국가의 중립의무로 노동자·노조의 자유로서 보장됐다. 자본과 노동의 권리가, 자본과 노동의 주장이, 노동의 쟁의행위와 자본의 대항행위가 서로 충돌하는 때에 국가권력은 중립으로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러니 공권력은 심판자로서 노동현장에서 노자의 다툼을 법집행해야 한다고 자임했다. 심판은 경기장에서 법, 즉 룰에 따라 경기를 운영해야 한다. 그렇게 운영하라고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공권력, 즉 노동위원회와 노동행정기관·사법기관에게 심판자가 되도록 한 거라 했다. 경기장에서는 심판의 판정이 경기를 지배한다. 아무리 편파적인 판정이라 해도 그건 심판위원회라는 심판들의 재심으로만 번복될 수 있다. 심판들 스스로 번복하지 않는 한 그 판정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2초를 1초라고 해서 상대방이 공격하도록 하고, 파울이 아닌데도 파울이라고 편파 판정을 한다면 경기는 일방적으로 한 쪽으로 기울고 만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런던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SJM에서 직장폐쇄를 하고 경비용역을 투입하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경비용역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도 경찰은 경비용역의 범죄행위를 예방하거나 진압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업장에서 공격적인 위법한 직장폐쇄가 계속되는데도 노동행정기관은 즉각 위법하다며 중단하라고 사용자에 조치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노조간부들을 폭행해서 경찰서에 끌고 온 체포·감금의 현행범인을 공권력·경찰은 체포하지 않았다. 지금 이 나라에서 자본에 의한 노조 파괴는 법제도가 부여한 이런 심판자로서의 기능을 공권력이 방관하고 묵인함으로써 발생하고 있다. 때로는 부작위로, 때로는 오심으로 이 나라에서 공권력은 노동현장에서 전혀 중립적이지 않게 공정하지 않게 행사되고 있다. 자본의 불법적인 노조 파괴에 대한 비난은 결국 이 나라에서는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비난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유성기업에서 노조가 파업을 철회했을 때 즉각 직장폐쇄가 불법이라고 법집행을 했어도, 발레오만도와 KEC·3M에서 그런 공정한 법집행이 있었다면 기업노조가 세워지고 기존 노조가 급격히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 노동자들이 직장폐쇄의 공포에 사로잡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4. 이제 이 나라에서는 자본의 불법을 규제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자본이 구매하고 고용했던 경비용역의 불법을 규제하기 위해서 경비업법을 강화하라 외친다. 자본의 폭력을 처벌하라고 외친다. 법이 있다면 불법은 규제되고 범죄는 처벌돼야 한다. 국가의 법이 존재한다면 자본의 불법도 규제되고 자본의 범죄도 처벌돼야 한다. 국가권력은 그것을 집행해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그걸 하라고 외치는 것은 국가권력에게 사권력이 아닌 공권력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관작업’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국가권력에게 공권력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이 나라에서 공명정대한 법집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거창한 정치적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높은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쟁취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국가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거기다 대고서 자본의 세상에서 국가는 자본계급의 무엇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언어구사다. 그저 정상 국가를 말하고 있다. 그저 노동현장에서 국가권력이 공권력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걸 외치는 국가의 국민은 명예롭지 않다. 그럴 걸 외치는 노동운동은 비참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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