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 철회’에서 더 나아가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이후 민주노총이 강령적·정책적으로 지지 철회를 구체화하고 조직적 참가를 금지하게 되면 이 선언은 현실적으로 완성된다. 우리나라도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의 전통적 분업관계가 해소되는 역사의 궤적을 밟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의 분업관계는 노동운동이 발전한 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이 국가들에서도 1960년대를 거치면서 양 조직의 분업관계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부분 진보정당의 중도화 내지 우경화에 기인했다. 독일에서 사민당이 노동자계급정당의 정체성을 버리고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으로 변하면서 독일노련과의 관계가 청산된 것이 가장 이른 사례다. 그리고 1990년대에 노동당이 당내 집단투표제를 폐지하면서 노총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영국이 그러했다. 사민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에서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공산당이 좌파민주당으로 개명해 공산주의를 포기함으로써 공산계 정파노조인 노동총동맹(CGIL)과의 공식적 관계가 해소됐다.
이 변화들은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출발한 진보정당들이 점차 집권을 최고 목표로 중간층을 겨냥해감에 따라 계급성을 탈각한 결과였다. 물론 노조의 온건화와 관료화도 영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노동운동을 떠받치는 두 조직의 관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정당들의 탈계급성이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노조는 조직생태적으로 광범위한 사회적 약자나 저변층을 포괄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당은 계급성을 탈각하는 순간, 국민 일반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득표만을 목표로 하게 되고, 그 결과 현대 사회 선거에서 가장 두텁다고 간주되는 중간층을 겨냥하게 된다.
물론 민주노총과 통진당의 결별은 민주노동당 구당권파의 전횡이 직접적인 계기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민노당 시절에도 존재한 문제이므로 결별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구당권파는 민노당에만 포진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정희 전 대표가 민주노총의 결정을 “노동계 상층”의 결정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러한 점을 의식한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통진당과 결별한 근본적인 이유는 지지 철회 이유에서도 밝혔듯 통진당이 노동자 대중의 정서와 멀어졌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그 결별은 구당권파의 전횡 때문만이 아니라 민노당의 변화가 총체적으로 계급성을 탈각해 왔고 결국은 노동자대중의 정치세력화 내용과 괴리됐기 때문이다. 만일 민주노총이 이를 의식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깊은 성찰을 통해 통진당과의 단절을 선언적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완성해야 한다.
이러한 결별의 완성은 다시 새로운 노동운동 조직의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의 양 조직 관계는 분업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관계 설정이었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의 양대 축이지만, 서로 분리된 채 마차를 굴리는 두 수레바퀴와 같은 관계는 아니다. 정당은 의회투쟁에 국한되고 노조는 임금·단협 같은 경제투쟁에 한정되는 분업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조합은 대중조직으로서 일차적으로 경제투쟁을 주도하지만 노동자 대중의 이해와 관련되는 정치·사회적 문제를 두고 정부와 직접 협상하며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정당도 일차적으로는 의회투쟁을 주도하지만 노동조합의 투쟁에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두 조직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정치전선을 함께 추동해나가야 한다.
노동자대중에 뿌리를 둔 민주노총은 노동운동 지형을 떠난 구 진보정당과의 단절을 완성하고, 새로운 진보정당과 새로운 관계 형성을 도모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직접적인 정치사회투쟁을 주도해나가야 한다. 우리 노동자들은 이미 스스로 직접적인 정치사회투쟁을 통해 민주화와 중요한 사회개혁들을 쟁취한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단절을 완성하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모색해야
- 기자명 정병기
- 입력 2012.08.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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