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로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꼭 8년째를 맞았다. 지난 93년 도입된 산업연수생 제도가 송출비리나 불법체류 문제의 온상이라는 지적이 일면서 2003년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법)이 제정됐고, 2004년 8월 시행됐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뒤 이주노동자는 급증했다. 2005년 10만4천명에 불과했던 이주노동자들이 올해 5월에는 다섯 배에 육박하는 48만5천명으로 늘었다. 일반 외국인력(E-9)이 19만4천명이고, 방문취업동포(H-2) 비자로 입국한 노동자는 29만1천명이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17만6천명에 달한다. 이주노동자 정책도 단속 중심이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매년 단속 과정에서 다치거나 숨지고 있다. 시행 8년째인 고용허가제를 평가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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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사업주 이익만 보장, 노동허가제로 전환해야” 

김기돈
한국이주노동자
인권센터 사무국장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산업연수생 제도가 시행됐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열악해졌다. 이주노동자인권센터 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매월 300시간 가량 일하고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절반 이상이 폭력과 부당한 임금 공제 등에 시달리고 있다. 위험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사업장 변경 자체를 제한하고 있는 현행 법령에 더해 최근에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사업장 변경을 위한 구직리스트 제공을 금지하는 지침마저 내렸다. 독소조항이 더 강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사업주로부터 채용연락을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한 채 추방돼야 한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또 송출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도입 취지 또한 전혀 해결되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브로커에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한국에 입국하고 있다. 게다가 막무가내식 단속으로 인권탄압을 유발해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하는 지침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모는 고용허가제 대신 노동허가제를 도입해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국제기구도 인정하는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발전” 

이태희
고용노동부
인력수급정책관

지난 2004년 8월,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래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올해로 시행 8주년을 맞았다. 당시 제도 도입을 둘러싼 여러 논란 속에 어렵게 출발한 고용허가제는 그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어느덧 국제기구에서도 인정하는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0년 고용허가제를 아시아의 선도적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평가했고, UN은 지난해 6월 부패방지 및 척결 분야의 혁신성을 인정해 공공행정상 대상을 수여했다.

올해 5월 말 현재 고용허가제를 통해 48만5천명의 외국인근로자가 인력난을 겪고 있는 8만4천개의 영세사업장에 공급됐다. 종전에 문제가 됐던 각종 송출비리와 브로커 문제는 대폭 개선됐다. 1인당 평균 송출비용은 2001년 당시 3천509달러에서 지난해 기준으로 927달러로 25% 감소했다. 내·외국인 차별을 두지 않고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 노동관계법을 적용하면서 외국인근로자의 권익도 크게 신장됐다.

앞으로 적정 외국인력 도입규모 결정시스템을 확립하고 따뜻한 체류환경을 조성하는 등 고용허가제 운영을 내실화할 계획이다. 외국인근로자 보호에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되도록 전용보험 가입률을 높이고 운영방식을 개선해 이용자들의 불편사항을 해소해 나갈 것이다.

“사업장 이동제한, 단속위주 관리 한계”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국장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생 제도 당시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노동인권 문제를 야기했던 것을 합법적인 테두리로 끌어낸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업장 변경 제도의 제한적 운영이나, 고용기간 제한 문제는 여전하다. 이로 인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사람 중 다수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다. 유수의 연구기관들이 고용허가제가 실패로 흐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가 우리 산업에서 주요 인력으로 자리 잡았는데도 고용허가제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틀을 벗어나 차제에 이민제도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민제도는 기업 등에서 고용인력 차원에서 일정한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정주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기한을 정한 고용허가제는 제도적 한계에 와 있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전체적인 불법체류가 늘어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했다가 5년까지 정주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있을 수 없으니까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3년째에 체류허가를 받지 못하면 도망가기도 한다. 조치를 마련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 사업장 이동 제한과 단속 위주의 고용관리는 한계에 다다랐다.

독일의 경우 고용허가제 형식으로 운영했는데, 8년으로 늘렸다가 결국 풀었다. 우리나라도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60~70년대 파독된 우리나라의 광부나 간호사들도 원하는 사람은 정착했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최우선 과제” 

기형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올해로 8년째를 맞은 고용허가제에 대해 정부는 우수한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기본권을 침해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 기간 4년10개월 동안 사업장을 단 세 번만 옮길 수 있다. 그것도 사업주가 폭행이나 체불 등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아니면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신청에 순순히 응할 때만이 가능하다. 이주노동자들은 단지 회사를 바꿨다는 이유로 합법적 신분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 제한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원인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하고 있다며 이달 1일부터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더욱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고용센터에 게시된 사업장 명단을 없애 버리고, 사업주에게만 이주노동자 명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8년 전 노동허가제 도입을 요구했다.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면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노동허가제와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아울러 5년 넘게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주노조 설립신고 반려 취소소송에 대한 판결이 하루빨리 내려져야 한다. 법원은 아무런 이유 없이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이주노조 합법화에 대한 최종 판결을 미루고 있다.

“국내 노동시장 보완, 외국인력 적재적소 활용성 높여야” 

김판중
한국경총
고용정책팀장

2004년 도입돼 8년째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는 국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완화하고 외국인력의 권익을 보호하면서 UN과 ILO 등 국제기구로부터 성공적인 이주시스템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대내외적인 긍정적인 평가에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외국인력 신규 도입규모가 축소됐고, 외국인력 고용희망 사업주의 내국인 구인노력의무가 강화되면서 제도와 현실 간 괴리가 심화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내국인력의 3D업종 취업기피로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외국인력 신규 도입규모는 2008년 13만2천명에서 2012년 5만7천명으로 감소했다. 인력난은 더욱 심화했다.

불법체류자 문제도 심각하다. 올해 6월 기준 17만명인 불법체류자는 내국인 일자리 잠식, 외국인 범죄 증가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회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노동계는 외국인력의 사업장 변경 횟수·사유·기간을 제한하는 사업장 변경 제도가 외국인력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를 헌법에 부합하는 제도라고 평가했다. 이제는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력의 국내 노동시장 보완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외국인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외국인력 도입규모의 탄력적 조정, 외국인력 고용허가업종 확대, 외국인력 고용절차 간소화 등 시장수요를 반영한 제도 설계가 절실하다. 또 불법체류자에 대한 합리적 관리를 통해 국내 노동시장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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