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분명히 노동조합의 교섭권 행사를 제한하는 악법이다. 그러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법을 제안하고 의결했던 자, 교수든 국회의원이든 고용노동부 관료든 비난받아야 한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이런 법이 입법될 수 있게 협의해 줬다면 그 노동단체의 대표들도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런 입법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 나라 노동운동도 비판받아야 한다.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제도는 어떤 노동조합에 유리하고, 복수노조제도는 어떤 노동조합에 유리하다며 개정 노조법안을 노조에 따른 유불리의 문제로 접근했던 대응방식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문제였다. 입법돼서 시행되면 어떤 노동조합이라도 그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노조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용자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내야 하는 노동조합으로서는 입법저지 투쟁에 사력을 다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2010년 1월1일 새벽 악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제도는 같은해 7월1일 시행돼서 이제 2년이 지났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는 지난해 7월1일 시행돼서 이제 1년이 지났다.

2. 개정 노조법 시행으로 노동조합은 파괴됐다. 일일이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은 노동조합이라 해도 투쟁의 힘은 현저히 약화됐다. 개정 노조법은 사용자의 무기로 입법됐다. 노조를 파괴하고 약화시키는 사용자의 법으로 시행됐다. 복수노조제도는 자주적인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새기업노조 설립에 활용됐다. 지난달 27일 직장폐쇄와 용역투입을 한 만도에서도 바로 기업노조가 설립됐다. 지금 이 나라에서 자주적인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 사용자는 “복수노조는 나의 힘”이라고 외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조로서의 지위라도 확보하고 있으면 노조법 시행령에 따라 그 지위에서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2년까지, 또는 그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2년 미만이라면 그 단체협약의 효력이 발생한 날로부터 2년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제14조의10). 기존 노조로서는 사용자의 복수노조 설립에 대응하기 위한 활용 수단인 것이다. 직장폐쇄의 공포, 용역투입이라는 사업장 계엄상태에서 만도의 사용자는 몇 백명씩 휴가 중이던 조합원을 불러 들여 교육장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금속노조 탈퇴서와 새기업노조 가입서를 받았다. 이달 13일 발행된 새기업노조 소식지는 8월9일까지 총원 2천262명 중 2천061명이 가입해서 가입율 91.1%이고 아직 201명만 가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기존 조합원 중 10% 미만만 남았다. 이런 상태에서 금속노조가 만도에서 교섭대표노조로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면 새기업노조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는 노동조합으로 교섭과 쟁의행위 등 활동을 해 나갈 수 있다. 나아가 교섭대표노조의 지위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과연 금속노조가 만도에서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3. 그런데 지난주 회사는 교섭창구를 단일화하겠다고 노조에 밝혔다. 그리고 새기업노조, 즉 만도노동조합은 “창구단일화 관련 법을 지키지 아니한 사실이 너무도 명백하여 회사에 적법한 교섭대표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 정한 창구단일화 절차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우리 노동조합의 요구를 회사가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9월 중순경까지 노조법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마치고서 9월 중순경 교섭대표권을 확보해서 추석 전에 임단협을 끝낼 것”이라고 소식지에서 밝혔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고 있다면 노동부의 업무매뉴얼에 따른다면 새기업노조는 교섭도 쟁의도 협약체결도 할 수 없는 식물노조로 전락한다.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서 지위가 유지되는 기간까지는 새기업노조는 조합원을 위한 임금 등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도 하지 못하고 설립신고서만 사무실에 걸어두고 그저 금속노조에 잘 교섭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 처지가 된다. 이로써 사용자의 직장폐쇄와 용역투입, 선별복귀로 급격하게 무너지던 금속노조는 만도에서 상황반전의 무기를 갖게 된다. 만도에서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고 있다면 그렇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교섭대표노조 지위가 있는 걸까.

지난해 7월1일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만도는 금속노조와 교섭해서 임금 등 협약을 체결했다. 그 당시 교섭할 노조 지위가 인정되지 않았다면 당시 교섭은 뭐고, 쟁의는 뭐고, 그렇게 해서 체결한 협약은 또 뭐가 되는가. 교섭대표노조도 아닌데 사용자와 교섭하고 쟁의하고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만도 사용자도 금속노조의 교섭권 행사를 인정해서 교섭하고 협약을 체결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업무매뉴얼을 만들어 법시행을 관리·감독했던 노동부도 뭐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7월 이후 금속노조가 만도에서 교섭대표노조가 된 거라면 위 노조법 시행령에 따라 그렇게 체결된 협약 효력발생일로부터 2년간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는다. 더구나 올해 상반기 금속노조는 만도 사용자에 교섭을 요구해서 최근까지 십여차례에 걸쳐 교섭해 왔다. 지난해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올해 초 금속노조가 교섭요구를 했을 때 당연히 사용자는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친 후 교섭대표노조와 교섭했어야 했다. 개정 노조법 시행령은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가 그 사실을 공고해 다른 노조가 교섭참가신청을 하도록 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돌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4조의3). 지난 7월 금속노조의 조정신청에 대한 결정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교섭대표노조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 사업장에 대해선 조정대상이 아니라며 행정지도 결정을 했다. 그런데 만도에 대해서는 행정지도 결정을 하지 않았다. 사용자도, 노동부·중노위도 만도에서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란 걸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기업노조가 설립되자 사용자가 그걸 부정하고서 교섭창구 단일화절차를 말한다면 어째야 할까. 권력이 그런 사용자를 용납한다면 법은 사용자의 농락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거다.

4. 지금 만도에서 금속노조의 교섭대표노조 지위는 사용자와 새기업노조에 의해서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 확인돼야 마땅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벌써 법이 시행된 지 2년째이고 그 사이 교섭도 두 차례나 진행됐는데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인가.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서 사용자와 교섭하겠다고 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든, 올해든 금속노조가 사용자에게 교섭대표노조 지위에서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겠다고 분명히 했다면 지금 만도에서 사용자가 감히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부정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운운하는 걸 보지 않아도 됐다. 그랬다면 새기업노조가 감히 “창구단일화 관련 법을 지키지 아니한 사실이 너무도 명백하여 회사에 적법한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서 자신들이 교섭대표권을 확보해서 추석 전에 임단협을 끝낸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만도에서 금속노조는 사용자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관련해서 지난해 또는 올해 금속노조와 교섭할 때에 뭔가를 했었기를 기대하면서 당시 사용자의 행위자료를 찾고 있다. 그래서 노동부든, 중노위든 그걸로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에 있다고 확인해 줬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사용자의 오늘 행위를 부정하기 위해서 사용자의 어제 행위에 한 가닥 기대를 걸 수밖에 지경이 돼 버렸다. 복수노조제도에서 다른 노조를 식물노조로 만들거냐, 아니면 스스로 식물노조가 될 거냐, 그것은 자본과 권력의 일인 거라고 방치한다면 그 결과가 어찌될 것인지 이번 만도사태는 구체적인 사례로 이 나라 노조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노조의 일이기도 했었다. 그저 악법은 따를 수 없다고 악법을 무시한 노조의 대응방침이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면죄부가 아니다. 그런 대응방침을 결정한 것까지 책임을 면할 순 없다. 악법철폐 투쟁과 악법 하의 노조 활동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노조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악법을 철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조 활동은 악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차피 노조법은 전체적으로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제한하고 금지하는 악법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지금까지 이 노조법에 근거해서 설립돼서 활동을 해왔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관한 법규정보다도 심각하게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는 규정들이 노조법에는 존재하고 그런 노조법 하에서 금속노조 등 이 나라 노조는 활동해 왔다. 심지어 기업단위의 복수노조 설립이 제한될 당시에는 금속노조 등 이 나라 산별노조는 이를 활용해서 조직사업을 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관련해서 노조법을 따를 수 없다고 방침을 정한 거라면, 그것은 악법저지 투쟁으로 막지 못했던 것을 개별 사업장조직이 돌파하라고 하는 거다. 그건 만용이거나 바보짓이다. 투쟁의 정당성 운운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지금 만도사태는 금속노조, 나아가 이 나라 노조운동에 묻고 있다. 악법철폐 투쟁과 그 악법 하에서 노조활동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 것인지 묻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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