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위원장 직선제’를 재검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노동조합운동의 운영원리와 노조 민주주의 원칙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해외의 노총들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지도부를 선출한다.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노총 지도부는 대의원대회에서 선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운동을 자랑하는 스웨덴에는 3개 노총이 활동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 노조들의 노총인 LO와 사무직 노동자 중심인 TCO, 그리고 고학력 전문직 중심의 SACO가 그것이다. 세 노총 모두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를 뽑는다.

최대 노총인 LO는 14개 노조를 통해 150만명(여성 69만명)을 조직하고 있는데, 최고 의결기구는 4년마다 열리는 전국대의원대회로 산하 노조에서 선출된 대의원 430명이 참가한다(참고로 LO 본부의 상근인력은 150명 수준). 대의원대회 결의사항에 대한 집행계획의 수립과 일상적인 의사결정은 15명으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LO 위원장과 부위원장 3명, 산하 노조 지도부 11명)에서 책임진다. 집행위원회는 격주로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독일은 사실상 DGB 중심의 단일노총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조합원이 600만명인 DGB에는 8개 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전국대의원대회는 산하 노조들이 파견한 대의원 400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핵심 지도부는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되며, 이들 노총 지도부와 산하 노조위원장 8명이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독일노총을 일상적으로 운영한다.

남미 최대 노총 조직인 브라질 CUT의 지도부는 3년마다 열리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다. CUT 일상활동의 최고 집행기구인 전국집행위원회는 27명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부위원장·사무총장 등 지도부를 비롯해 여성·총무재정·조직정책·노사관계·홍보·국제관계·정치·청년·산업안전 등 부서장들로 이뤄져 있다. 모두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명직인 노총 부서장들을 브라질 CUT에서는 대의원대회에서 직접 선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CUT에 속한 조합원수는 740만명에 달한다.

브라질과 더불어 제3세계 노동운동의 대표적 노총인 남아공노총(COSATU)의 경우 산하 산별노조에서 조합원 750명당 1명의 대의원을 선출해 3년마다 열리는 전국대의원대회에 파견하며, 여기서 노총 위원장·부위원장·회계감사·사무총장·사무차장을 뽑는다. COSATU의 조합원수는 180만명이다.

위원장 직선제, ‘대리투표’ 전락할 것 

세계 어디에도 노총 위원장을 가맹노조 조합원들의 직선으로 뽑는 나라는 없다. 사실 산하 산별노조들을 주축으로 하는 노총의 조직구조상 ‘위원장 직선제’라는 말부터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직선제에 대한 선호는 우리나라 정치사와 노동운동사의 특성에서 연유한다. 1987년 군부독재에 대항한 ‘대통령 직선제’ 쟁취와 기업별노조의 ‘노조 민주화 투쟁’ 경험이 그것이다. ‘어용-기업별 노조’ 시대에 자리 잡은 “직선제는 좋은 것, 간선제는 나쁜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그때 이후 변하지 않고 있다. 100명의 민주주의와 100만명의 민주주의는 조직구조와 운영방식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당원직선제를 자만하던 통합진보당이 왜 국민적 조롱거리로 전락하면서 사실상 해체의 단계로 접어들었는지 노동운동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는 통합진보당의 당원직선제처럼, 자기 표를 줄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위’나 ‘옆’에서 시키는 대로 투표하는 ‘대리투표’로 귀결될 게 자명하다. 노동운동의 미래를 좌파적 언사를 쏟아내는 ‘우익 선동가’의 손아귀에 쥐어 줄 순 없는 일이다.

민주노총의 당면과제인 자기혁신, 조직 민주주의 강화, 사회적 권위의 회복은 위원장을 직선으로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위원장 직선에 쏟을 에너지와 자원을 조합원들의 현장토론을 통한 민주노총 위상과 노선 정립 작업에 투여하는 게 보다 효과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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