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한국 기업들은 장시간노동 관행을 통한 수탈형 노동력 이용방식과 요소투입 중심형 생산체제를 장기간 온존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시간 양극화, 노동력 배분의 불평등이 초래된다. 연간 3천500시간을 넘게 일하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실업과 불안정고용으로 고통 받는 전체 절반이 훨씬 넘는 노동자가 있다. 한쪽의 장시간노동과 또 한쪽의 실업 또는 불안정고용이 공존하는 풍경은 한국사회 노동체제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다.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에서 벌어지는 심야노동 해소를 위한 교대제 개편 논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기회로 여겨졌으나, 몇 년째 공전만 거듭하면서 한국 사회에 긍정적 충격을 가져다줄 기회를 놓치게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노동시간단축과 고용의 영역에서 우리가 되새겨 볼 일은 무엇이고, 단기적이고 현실적인 우려를 넘어 노동시간체제의 새로운 전망을 가져올 방법은 무엇일까. <매일노동뉴스>가 4회에 걸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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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1. 노동시간단축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교대제 개편방안
(박근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2. 현장에서 바라본 교대제 개편의 가능성과 노동시간단축의 의미
(조건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교선부장)

3. 교대제 개편과 노동시간단축의 고용효과와 사회경제적 효과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

4. 교대제 개편의 서구 사례와 한국에 주는 함의
(이상호 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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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우주볼펜’과 연필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우주개발경쟁을 할 때의 이야기다. 볼펜은 공기압과 중력이 잉크를 밀어 줘야 쓸 수 있기 때문에 무중력 진공상태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은 거금을 들여 무중력 진공상태에서도 쓸 수 있는 ‘우주볼펜’을 개발했다. 미국 우주비행사가 소련 우주비행사를 만나 최첨단 필기구인 ‘우주볼펜’을 자랑하고서, 소련은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소련 우주비행사는 아주 간단하게 답변했다.

“우리는 연필로 쓴다.”

일자리 부족과 장시간 노동의 공존

- 2012년 6월, 전체 고용률 60.4%, 청년층(15~29세) 고용률 40.7%, 25~29세 고용률 70.0%(7월11일 통계청)

- 2010년 기준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 2천111시간으로 미국(1천786시간)보다 325시간이나 길고, 전체 고용인구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193시간으로 OECD 평균(1천749시간)보다 444시간이나 많음(OECD, 2011, OECD Employment Outlook).

사회적으로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취업한 사람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혹사당하는 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해법은 뭘까. 그렇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배규식 등(2011, '장시간 노동과 노동시간 단축-장시간 노동 실태와 과제')에 의하면 “2010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인 2천193시간을 OECD 평균 연간 노동시간인 1천749시간으로 줄일 경우 (…) 약 190만6천명의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 (…) 장시간 노동의 단축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보수적으로 예측해 보면 약 100만개의 일자리 창출은 가능하리라 예상된다.”

100만개의 일자리 창출! 경제위기의 시대, 다수 국민이 삶의 위기에 봉착한 지금 우리에게 이보다 더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있을까.

이른바 전문가들이 단순명쾌한 해법을 놔두고 복잡한 해법을 제시할 때, 우리는 의심해 봐야 한다. 정말 문제가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해결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연필 놔두고 ‘우주볼펜’을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근로기준법 준수와 연장노동의 엄격한 제한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연장근로 제한의 준수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 고용노동부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장시간 초과노동이 이뤄지고 있는 실태를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우리나라 재계’의 수준을 볼 때 그들의 반발은 당연하고 예상된 것이라 하더라도, 노동계의 ‘방관’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고용돼 있는 조직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이해대변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다시 절감하게 된다.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 혹은 준수 문제는 국가적 차원의 접근 방식이고, 최저기준을 설정하는 문제이므로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특히 26%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보전 문제가 중요하다.

둘째, 모범사례의 창출

국가적 차원의 접근과 함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좋은 산업과 기업에서 먼저 모범을 창출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한국의 중심·선도산업의 하나이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자동차산업에서, 특히 탁월한 성과를 보여 주고 있는 현대차그룹에서 모범을 창출해야 한다.

현대차 노사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심야노동을 없애기 위해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10년째 논의하고 있으나, 여전히 답보상태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현대차의 접근방식이 지닌 가장 큰 문제는 '노동시간단축-교대제 개편이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게 보면 ‘동일 인원, 동일 인건비, 동일 생산량’일 뿐이다.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자동차산업, 그 대표기업인 현대차마저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과제를 외면하면, 우리 사회의 ‘고용의 위기’, ‘삶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35시간 노동제+과도적 3교대제

고용창출 효과가 가장 큰 교대제 개편 방식은 교대조를 추가하는 것이다. 2조2교대를 3조3교대로 개편하면, 단순 계산으로는 50%의 추가 고용이 창출된다. 또한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기 위해서는 연장노동의 제한만으로는 부족하며, 기본노동시간의 단축이 필요하다. 따라서 '35시간 노동제+과도적 3교대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35시간 노동제+과도적 3교대제'를 시행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평일 노동시간이 주당 50시간(혹은 48시간)에서 35시간으로 30% 정도 단축된다. 또한 심야노동(22시~익일 6시)이 완전히 폐지되지는 않지만, 6주 기준으로 120시간(주야맞교대)에서 80시간(3교대)으로 3분의 2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회사 입장에서는 하루 공장가동시간을 20시간(주야맞교대)에서 21시간(3교대)으로 한 시간 확대할 수 있고, 평일 생산량이 늘어나며, 휴일특근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공장을 신설하거나 생산속도를 높일 필요가 없다.

우선 실현가능한 '35시간 노동제+과도적 3교대제'로 개편하고, 심야노동을 완전히 폐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대차 노사가 2005년에 이미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합의했음에도 지금까지 별다른 노동시간 단축도, 심야노동 축소도, 고용창출도 없었다. 이를 고려하면 현재 시점에서 '35시간 노동제+과도적 3교대제'는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 ‘노동시간 단축, 심야노동 폐지, 건강권 확보, 삶의 질 개선, 고용창출’을 위한 ‘진정성 있는 자세’일 것이다.

자동차산업 차원의 노사정 협의기구 필요

현대차의 교대제 개편은 한국자동차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모범사례로 만들어야 한다. 현대차 노사 간에는 오랜 기간 교대제 개편에 대한 논의와 교섭이 진행돼 왔으나, 대다수 기업에서는 그러하지 못했다. 완성사와 부품사 간 힘의 불균형, 많은 사업장에 노동자들을 대표할 노동조합조차 없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노동시간단축과 교대제 개편, 이를 통한 고용창출에는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다. 특정 기업만의 입장이 아니라 한국자동차산업 차원에서 사회적 논의와 협의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노동시간단축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자동차산업 차원의 노사정 협의기구'를 제안한다.

좋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창출하는 문제는 핵심적인 사회과제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시대에는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민 생활을 보장한다’는 사회적 합의와 사회경제 정책이 더욱 필요하다. 한국의 선도산업인 자동차산업에서는 교대제 개편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과 좋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현행 주야맞교대를 '35시간 노동제+과도적 3교대제'로 개편해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고, 좋은 일자리를 대량 창출하며, 심야노동을 폐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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