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에서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윤리경영을 하겠다"는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신한은행은 금리를 낮추겠다고 했고, KB국민은행은 서민금융 지원과 가계부채 연착륙 지원을 약속했다. 우리은행도 수수료와 대출금리 조정안을 내놓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담합 의혹에 이어 학력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하고 대출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반성문인 셈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실효성이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너무 때늦은 반성문이라는 비난도 제기된다. 은행들의 사회적 책임경영 선언,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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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회적 책임은 경영진 인식 전환에서 출발" 

유주선
금융노조 부위원장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금융권 CD금리 담합 의혹 제기를 계기로 이에 대처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왜 그러한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핵심은 뒤로 한 채 시장에는 후폭풍만 거세게 일고 있다.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금융노조는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과 금융공공성 강화를 주요 안건으로 올렸다. 사회적 책임을 위한 안건 중 하나로 대학생들에 대한 무이자대출을 요구했다. 4개월에 걸친 교섭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로부터 아직 한 치의 양보도 얻어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비춰 보면, 현재 금융권에서 최고대출금리 인하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전혀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반면 시장에서는 후폭풍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부 직원의 대출서류 조작의혹이 언론에 불거지면서 은행들은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기 시작했고, 은행창구는 불만이 있었던 소비자들의 고성이 난무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업무과다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직원들의 피로도 쌓여만 간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이윤을 통한 주주이익 극대화에만 매달린 경영진의 인식에서 비롯됐다. 5대 천왕, 6대 천왕으로 불리며 낙하산을 통해 내려온 경영진들은 실적 최우선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배불리기에 바빴다. 금융소비자와 직원들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경영진은 과감한 IT투자, 직원들에 대한 교육훈련 등을 통해 금리결정 구조에서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투자는커녕 실적지상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인센티브와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책임은 경영진의 인식과 이를 요구하는 사회경제 전반의 문화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생색내기용 임시방편 … 수익구조 다변화해야” 

김한기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

그동안 은행들은 대출금리와 수수료로 이익을 많이 챙겼다. 은행의 높은 수익은 임직원의 고액연봉의 토대가 됐다. 이번 대출금리 인하 발표는 여론 악화에 따른 생색내기용 임시방편으로 보인다. 은행이 진정으로 서민을 위하려면 불합리하게 수익을 내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수수료 수익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 대출금리를 낮추고 예금금리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대출금리 인하를 위해 근본적인 방안은 은행의 수익구조를 다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전근대적인 방식의 수익창출을 지양해야 한다.

제1금융권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최근 서민들이 대부업채나 사채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돈이 필요하지만 제도금융권에서 거절당한 경우다. 제1금융권에서 거부당한 사람은 차례차례 밀려 제2금융권으로, 다시 대부업체로 밀리고, 결국 사채로 몰리는 것이다. 많은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은행이 대출 장벽을 낮춰야 하는 이유다.

추가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사회공헌사업을 늘려야 한다. 은행이 손쉽게 번 과도한 수익은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저소득층으로 분배하는 것이 맞다.

“적정이윤 규제하고, 저소득층 지원 강화해야”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기본적으로 금융산업은 규제·허가산업이다.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금융산업에는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은행은 다른 기업처럼 많은 이윤을 벌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약탈적 영업행위, 다시 말해 고소득자에게는 수수료 면제 혜택을 주고 저소득자인 신용이 낮은 사람을 상대로 고리로 돈을 버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저신용자와 대학생 같은 저소득자·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은행이 적정이윤을 추구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국가 간에도 경상수지 흑자를 많이 내기 위해 환율을 떨어뜨리니까 G20에서 경상수지 흑자를 국내총생산(GDP) 5% 이내로 제한하자고 대책을 냈던 일을 참고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은행의 적정이윤은 자산 대비 5%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은행은 신용도가 높은 고소득자에게는 수수료를 감면해 주고 이자도 우대해 준다. 반면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자에게는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대출도 적게 해 준다. 결국 가난한 사람 돈을 털어 부자가 되는 셈이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은행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저소득자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을 늘리고, 예금금리는 우대해 줘야 한다. 특히 소득이 없거나 적은 대학생과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대정책을 적극 내놓아야 한다.

“불리한 상황 무마하려는 쇼” 

백성진
금융소비자협회
사무국장

전 세계적으로 금융소비자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금융감독원 안에 금융소비자원을 설치하고,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려고 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금융소비자법이 제정되면 금융사들의 기득권이 해체되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이다. 이번에 은행권이 ‘사회적 책임경영’이라며 발표한 방안은 이런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는다. 금리를 내리겠다고 하지만 특별한 내용이 없다. 차라리 금융노조가 얘기했던 학자금 무이자 지원이 더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할 것이다.

금융권의 탐욕은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할 때 하는 개인신용평가는 저소득층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게다가 부모님이 신용불량자인 경우에는 자녀도 금융혜택을 받지 못한다. 신용불량이 대물림되니, 연좌제나 마찬가지다. 안전망도 무너뜨린다. 일례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긴급생계자금지원의 경우 서울의 일부 자치구에서는 대출해 주기 전에 담보를 요구한다. 긴급하게 생계자금을 빌릴 정도로 열악한 사람들이 무슨 담보가 있겠나.

사회공헌 활동을 하겠다는데, 그 내용은 미소금융으로 알려진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이 대부분일 게 뻔하다. 미소금융도 신용불량자나 저신용자는 해당이 안 된다.

은행은 사회공공재다. 쇼를 하는 이유도 금융소비자들의 싸늘한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회색작전’의 하나다. 금융노동자들도 반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은행을 최소한 준공공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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