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유례없는 폭염 속에 노동자들에 대한 잔혹한 폭력이 자행됐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SJM(경기 안산)과 만도(평택·익산·문막) 노조에 대한 컨택터스의 무력 공격이 그것이다. 물리적 폭력의 잔혹함이나 노조파괴의 공격성은 2009년 쌍용자동차, 2010년 상신브레이크, 2011년 유성기업 와해사례의 판박이다.

각국의 노동사는 노동자에 대한 폭력의 계보가 자본제 역사와 같이하고 있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 노동운동 성장에 따라 개별 노동자에 대한 폭력은 법률로 금지됐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노조원에 대한 폭력은 사적 자본이 직접 저지르는 경우와 공권력을 배경으로 또는 묵인하에 사적자본이 행하는 경우, 그리고 사적자본과 국가권력이 합작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그 사례를 일일이 다 들 수는 없지만 우리의 경우 노동에 대한 폭력의 역사는 이미 일제 식민지 권력에 의해 광폭하게 자행됐다.

민족해방 이후에도 폭력의 역사는 거침이 없다. 해방공간에서 전평 노동자들에게 가해졌던 탄압과 폭력, 53년 부산 조방쟁의 때 경찰·땃벌떼·백골단의 잔혹한 폭력, 노조 결성 주동자라 하여 드라이버에 찔려 죽은 71년 한영섬유 김진수 사건, 전태일 열사의 분신항거를 계기로 결성된 청계피복노조에 대해 행해진 끊임없는 개입과 공권력의 무력행사, 70년대에서 80년대 초 국가보위법으로 노동기본권이 봉쇄된 상태에서 행해진 동일방직·반도상사·YH무역·콘트롤데이타·서통·원풍모방 노조에 대한 잔혹한 폭행과 민주노조 파괴 등. 당장 생각나는 대로만 들어봐도 이 정도다.

노조의 힘이 약했던 시대는 물론이고 노동운동이 활기를 되찾은 때에도 폭력은 여전했다. 오히려 더 무자비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70년대 이후 최근까지 노동열사들의 희생이 그치지 않는 것은 그 영향이자 결과라 할 수 있다. 80년대 중반은 구사대라는 이름의 폭력이 난무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직후인 89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 ‘노동해결사’를 자처하며 각목과 식칼을 휘둘러 대던 용역깡패 두목 ‘제임스 리’ 사건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공권력에 의한 폭력은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상화돼 왔고 2009년 8월 쌍용자동차 사태와 용산참사에서 그 잔혹함과 공포스러움을 송두리째 드러낸다. 노조에 대한 탄압은 갈수록 지능화하는 한편 이젠 민간업체가 폭력의 주체로 등장한다. 보안과 경비대행을 위탁받은 회사는 재개발지역의 철거와 노동투쟁현장에 투입돼 위력을 발휘하며 대형화해 갔다.

컨택터스는 폭력사태가 문제되자 해명서를 인터넷에 올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유혈폭력을 “불법적인 업무방해에 대응한 정당방위”라고 강변하고 이제 일부 기득 노동권력과 과감히 단절하라고 충고한다. 게다가 업체가 ‘허가취소’되면 불법행위가 판을 쳐 국내외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될 뿐 아니라 국내산업 기반이 와해될 것이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동시에 노사분규시 동원되는 경찰력은 민간과 직접 마찰하게 됨으로써 공권력에 크나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정치적·정책적 판단까지도 거침없이 내질렀다.

헌법이 건재하고 노동자와 그 가족이 국민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민주공화국에서 이런 오만방자한 폭력과 협박이 서슴없이 자행되는 것인가. 법률상 모순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법률의 판단과 집행은 정부의 권한이며 노동의 사전 판단은 인정되지 않는다. 몇 년이 걸려 나온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인내와 순종의 의무만이 주어져 있는 법치구조를 권력과 자본은 최대한 활용한다. 여기에 친자본 또는 자본 우위의 정치적·정책적 정황이 크게 작용한다. 특히 헌법의 기본권 정신을 넘나드는 권력자의 인식과 발언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조방쟁의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탄압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에게 “일하기 싫은 자는 떠나라”고 명령했고, 노동자들의 저항투쟁은 입에 담기 힘든 폭력을 당하며 패퇴하고 만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고소득 노조에 대해 언급한 데 이어 “만도라는 회사는 연봉 9천500만원이라는데 노조가 파업을 해서 직장폐쇄를 한다”는 발언도 쏟아냈다. 이것을 나라경제를 위해 자제를 호소한 수준으로 보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넘겨 버릴 수 있을까. 그 답은 취임 이래 되풀이된 ‘기업프렌들리’라는 표현이나,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인도 노동자와 교수노조를 언급하면서 “프라이드가 없어서 노조를 만든다”고 한 발언에서 나타난 바 있다.

최고 정책집행자인 대통령의 언급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넘어설 수는 없다. 또한 엄정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대통령의 노동에 대한 관점은 자칫 정책이나 행정으로 현실화돼 노사관계·노동현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배제적인 인식과 관점이 엄존한 가운데 법과 원칙의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정책적 그늘 밑에서 자행되는 비인간적·반노동자적 폭력을 막아 내는 일은 결국 민주·개혁·진보세력에 의한 정치민주화로 귀결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운동의 기저를 이루는 현장을 지키는 긴박하고도 시급한 과제 해결은 여전히 노동운동 자체의 몫일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leewb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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