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금속노조 만도지부와 SJM지회에 투입된 경비용역업체의 폭력 문제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노조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턴트와 경비용역업체의 존재는 노동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민간군사기업’을 표방하는 경비용역업체의 당당함을 보면서 파시즘이 도래했다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논란이 주로 경비용역업체에 맞춰지면서 몸통이 아닌 깃털에 초점이 쏠리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일례로 SJM(주)은 논란이 된 경비용역업체 컨택터스와 용역계약을 해지하고 에스엘가드라는 신규업체와 다시 계약을 맺었다. 조합원을 상대로 살인적 폭력을 저지른 컨택터스가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작 경비용역업체를 통해 조합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위법한 대체근로를 활용하고 있는 SJM 사용자는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만도(주) 역시 지회가 쟁의행위를 중단했음에도 위법한 직장폐쇄를 계속하면서 조합원들에게 금속노조 탈퇴 강요 등 부당노동행위를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는데도 고용노동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헌법 제33조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8조는 “사용자는 사고의 발생이나 그 밖의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사용자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노동자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형법상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한다. 하물며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면 그 사회는 사실상 노동3권을 부정하는 사회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 노동자들은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이 법·제도적으로 막혀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이용한 사용자의 폭력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너무나 사례가 많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2010년 7월 대법원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근거해 현대자동차(주)와 직접고용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한 후 현대차 울산·아산·전주의 사내하청지회는 그해 11월부터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쟁의행위에 들어갔다. 십수년간 불법을 저지르며 비정규직을 남용해 온 현대차는 사과와 대법원 판결 이행은커녕 쟁의행위에 참여한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이들과 연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살인적 폭력을 휘둘렀다. 아산공장의 경우 무려 30명이 골절 이상의 부상을 입었으며, 사내하청 지회장은 갈비뼈 3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사측 직원과 조합원들이 대치하게 되는데요. 사측 관리직원이 1차로 저희를 막아서면 그 뒤에 용역직원들이 2차 저지선을 형성합니다. 사측 관리직원들이 조합원 하나를 갑자기 1차 저지선 뒤로 잡아챕니다. 그러면 딸려 간 조합원을 그 뒤에 있는 용역깡패들이 달려들어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팹니다.”

“사측 관리자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네요. 안 되는 걸 알면서 왜 하느냐. 이 멍청한 새끼들아. 조용히 끌려 나가라. 안 그러면 너희 병신 된다.”

“사측이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 온양경찰서 사복형사들이 바로 옆에서 이를 보고 있었는데요. 저희가 형사들한테 도움을 요청해도 형사들은 못 본 척하고 용역들의 폭력을 방조하기만 했습니다.”

이상은 지난해 4월13일 법률·인권단체가 진행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탈퇴 강요·인권침해 진상조사보고서’에 실린 조합원들의 증언이다. 이런 폭력은 현대차 울산공장과 전주공장에서도, 사내하청 조합원과 해고자들이 사업장 출입을 요구할 때도, 사업장 밖에서 집회를 할 때도 반복됐다. 어디 현대차 비정규직뿐이랴. 1천600일 가까이 임금삭감 저지와 노조인정을 내걸고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의 학습지교사들에게도 폭력이 자행됐다. 2003년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사내하청업체 폐업이라는 방식으로 거리로 내몰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도 사용자(원청)의 폭력은 수십번 되풀이됐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권 침해가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되고 나서 ILO는 네 차례에 걸쳐 한국정부와 사용자에게 엄중한 권고를 내린 바 있다. ILO는 “폭력행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노사가 그러한 폭력적인 상태에 이르기 전에 한국정부가 대화와 단체교섭을 통해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방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현대차 울산과 아산공장을 비롯한 비정규직노조가 집회를 하는 동안 사설 경비업체 직원들의 폭력행위 관련 제소내용에 대해 독립적인 수사가 진행되도록 해 줄 것, 만약 제소내용이 확인된다면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그동안 고통 받은 모든 손해에 대해 희생자들에게 보상하도록 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2008년 이후 ILO가 매년 같은 내용을 권고하고 있지만 정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한 바 없다.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사전에 “불법파업 엄단”을 천명하는 정부가, 사용자의 폭력행사와 위법한 직장폐쇄에 대해서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라고 뒷짐만 지고 있다. 사용자의 ‘사병(私兵)’인 경비용역업체 문제뿐만 아니라 사용자와 그의 정규군 노릇을 하고 있는 공권력의 폭력에 대해서도 분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