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의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차장)

모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조합원 20명에 이르던 그들의 노동조합은 출범 세레모니와 함께 대부분 조합원이 탈퇴하고 현재 극소수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사측의 회유 때문이다. 회사에 밉보이면 받게 될 불이익을 선명히 보여 준 관리자들의 능력 덕분이다. 집단탈퇴 작업에 성공한 사측은 늘 그렇듯 두 번째 조치를 취한다. 회유에서 보여준 청사진을 실행하는 것. 이른바 핵심간부에 대한 탄압으로 이번엔 “부당전보”였다. 해당 노동자의 계약서에는 명백히 담당 업무가 특정돼 있다. 그러나 입사 이래 4년여 동안 동일한 업무만을 담당해 왔던 그 노동자는 노동조합 간부가 되자마자 생소한 업무에, 그것도 공단 건물근처에 얼씬도 못하는 외근직으로 내 몰렸다.

사태해결을 위해 사측을 찾아가 따지기도 하고 노동위원회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모두 외면당했다. 이유는 첫째, 해당 노동자는 원래 좀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주장이었다. 일하는 4년여 기간 동안 도합 5번 정도의 민원제기가 있었단다. 둘째, 회사의 입장에서 분위기 쇄신을 위해 순환배치가 절실했다는 것이다. 셋째, 회사는 고충처리를 위해 절묘한 시기에 간만에 노동자들과 면담했을 뿐 이른바 “탄압 내지 회유”를 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직장 노동환경에 대해 불만 토로를 아끼지 않았던 탈퇴 조합원들은 어느새 “00에서 일하게 돼 행복해요”란 취지의 진술서를 작성, 회사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진실이 아닌 이야기들에 할 말은 많았다. 해당 노동자가 받은 민원의 실상을 낱낱이 캐 보면 그의 책임이 아니거나, 다소 무리한 민원 제기여서 수년 전 이미 담당 관리자들도 무시한 사안이었다. 4년간 일해 온 숙련노동자를 내쫓고 계약직 신규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이 분위기 쇄신인지도 의문이었다. 또한 탈퇴한 조합원들은 다양한 비밀경로를 통해 미안함을 전달해 왔다.

위 사건에 대해 노동위원회는 밝혔다.

“부당노동행위의 정황상 증거만 있을 뿐 명백한 증거를 찾기 힘들다”, “임금의 불이익도 없고 출퇴근 거리가 현저히 차이 나는 것도 아니라서 부당전보라 볼 수 없다”라고. 심지어 “외근하면 바깥공기도 쐬고 답답한 내근보다 좋아진 것 아니냐”는 막말까지 가미해서. 해당 노동자는 전보 이후 헤르페스바이러스 감염 및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위 사안처럼 사용자들은 누구나가 부당성을 인지할 수 있는 노조탄압 방식을 채택하기보다 더욱 은폐된 방식의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체험을 통한 학습으로 세련되게 법을 악용할 줄도 안다. ‘노조결성 → 사측의 조합원 개별면담 → 조합 집단탈퇴 → 핵심간부에 대한 인사조치’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누가 봐도 잘 실행된 부당노동행위다. 이로 인해 노동조합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핵심간부에 대한 인사조치는 소속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하면 이렇게 된다’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탁상머리 판단으로 ‘기각’ 판정을 휘둘렀다.

노동위원회는 시민법의 원리가 철저히 구현되는 민사소송과 달리 사회법인 노동법의 원리가 적용되는 구제신청을 담당하고 있다. 그 특수성으로 인해 법원과 달리 정책적·합목적적·탄력적이며 신속·간이한 구제를 그 특성으로 하는 기관이다. 또한 엄격한 증거주의가 적용되는 법원과 달리 당사자의 변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조사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위원회의 현재 모습은 다소 한심한 수준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기관보다 노동현장의 변화와 세태를 읽고 능동적인 대처로 노동자 권익보호와 산업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능동적이긴 커녕 최소한 자신에게 부여된 조사와 같은 역할조차 도외시 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노동현장의 실상을 보려하지 않고 있으며, 케케묵은 과거의 법 논리를 단순 반복하는 것에 급급하다. 뿐만 아니라 권위를 앞세워 억울한 노동자들에게 막말에 가까운 ‘평’을 서슴없이 늘어놓을 따름이다.

지난해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징계·전보 등 포함) 인정률이 약 30%, 본래의 기능이라 할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은 고작 3%인 현실은 어쩜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노동위원회에 판정 현황만 보면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원만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현재 노동관계 전문가라면 누구라도 노사분쟁의 주요 원인 제공자로 노동위원회를 꼽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노동위원회는 스스로 변화무쌍한 노동현장의 분쟁해결 기구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최소한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연한 은폐형 부당노동행위, 박제화된 법 논리가 아닌 변화된 현실반영의 법 논리개발 등 노동자에게 버림받는 기관이 되지 않고 존재의 이유를 잃지 않기 위한 노동위원회의 진정어린 자기 반성이 필요한 때가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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