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다함께 행복한 공정일터 대한민국이 행복해집니다. 8월2일부터 근로감독관이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어 나갑니다.”

고용노동부가 지하철 광고로 내건 문구다. 2일부터 바뀌어 시행되는 개정 노동관계법 내용 중 근로감독관에게 차별시정 지도권한이 주어진 것을 강조해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참 뜬금없다. 차별시정제도가 시행된 지난 5년 동안 신청건수가 매년 100여건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유명무실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비정규 노동자 당사자만으로 차별시정 신청권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노조가 없는 상태에서 압도적인 힘의 열세 속에서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비정규 노동자가 사장에 맞서 차별시정을 신청하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따라서 실제로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대안은 신청자격을 노동조합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6개월로 차별시정 신청기간을 연장하더라도 현행 차별시정제도의 근본적인 맹점을 해결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라는 건 노동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안 그래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온 일선 근로감독관에게 권한을 줘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번 따져 보자. 차별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기준과 쟁점도 만만찮아 근로감독관이 소신 있게 차별을 적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근로감독관이 조사 사업장의 차별을 적발한 후 불이행 사업주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통보한 뒤 차별시정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비정규 노동자의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심리 등에 참여해야 하고, 지노위 결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때에도 비정규 노동자 당사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을 근로감독관과 함께 차별시정에 나서더라도 그 번거롭고 부담스런 과정을 감당해 낼 비정규 노동자는 거의 없어 보인다. 생색내기 사업으로 전락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근로감독관의 일상적인 업무에 또 하나의 업무가 얹혀지는 거라면 행정력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아니면 근로감독관에게 암행어사와 같은 강력한 처벌권한을 부여해 현장에서 직접 조치하게 하지 않는 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법의 명백한 한계 속에서라도 근로감독관의 역할을 기대하려면 치밀한 현장조사와 철저한 후속조치를 책임질 차별시정 특수전담반을 꾸리는 것이 그나마 나은 방책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금까지 노동부는 단 한 번도 차별시정제도를 정상화시킬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집권여당과 함께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에 걸림돌이 되는 반노동·친자본 기조의 입법과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노동계로부터 노동자를 괴롭힌다는 뜻으로 ‘고노부(苦勞部)’라는 비아냥을 받을 만하다. 그러다 이제 와선 말단 근로감독관에게 그 짐을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지금 서울시내 곳곳에 걸린 새누리당 현수막의 “비정규직 차별금지 등 12개 법안 국회 제출” 문구도 불법파견을 합법화하는 내용의 사내하도급법을 비정규직 차별금지법안으로 포장해 선전하고 있는 것인데, 한마디로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다. 이들 홍보문구만으로 일반 시민이 판단한다면 노동부와 새누리당이 비정규직 차별금지와 개선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하다. 새누리당이야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 표심을 사려고 그러는 것이라 해도 유일한 노동 관련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마저 그러면 안 된다.

우선 이번 19대 국회에서 차별시정제도의 근간이 올해를 넘기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정권 실세 각료인 이채필 장관이 마지막에라도 책임 있게 앞장서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이제는 집권여당도 강조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금지를 위해 응당 노조까지 차별신청 권한을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용자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고 올바르게 입법이 완료될 수 있도록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을 낮춰 보면서 양대 노총에 눈부라려 온 그 힘을 선용해 이제는 수많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입법과 정책 실현에 주력해야 한다. 아전인수 격의 잘못된 홍보에 눈이 팔린 노동부가 비정규직 차별 없는 공정한 일터를 위해 본분을 되찾아야 할 때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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