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

알고 보면 선진국에서도 건설재해 예방활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해 온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12세기 유럽에서는 목공·석공·도장공·벽돌공들이 각각 길드(중세 수공업자들의 동업조합)에 소속돼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길드는 그들에게 그 직종에서의 숙련공 증서를 발부했다. 그들의 고용과 고용장소는 늘 한시적이었다. 유럽이 세계 여러 지역을 식민지화하면서 이런 식의 특화된 기능공 중심의 건설기술을 세계 각지에 전파했는데, 현장 관리상의 문제점도 함께 전파한 셈이 됐다. 이런 전통으로부터 하나의 건설현장에 여러 명의 사업주와 여러 직종의 근로자가 한데 섞여 일해야 하는 고도로 분업화된 건설현장이 생겨나게 됐으며, 직종 간의 협조와 관리문제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여기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용접공·배관공·보일러공·기계공·전기공 등 새로운 건설직종이 생겨나면서 관리문제는 더욱 커지게 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재해예방활동보다 재해보상이 독일과 북유럽에서 건설근로자 복지제도로서 먼저 시작됐고, 프랑스와 남부유럽에서도 뒤따라 보상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다 재해보상비가 너무 커졌고, 마침 20세기가 시작되면서 길드가 노동조합으로 바뀌는 것을 계기로 더 나은 작업환경을 만들자는 요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재해예방 규제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건설재해예방에 관한 'EU directive'가 만들어진 것은 1992년이었다.

미국에서도 대체적으로 유럽과 같은 경과를 밟은 것으로 보면 되겠으나, 미국은 노동조합단체의 요구에 의해 1990년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에서 포괄적인 건설재해예방 연구활동부터 시작한 것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노동조합단체에서는 NIOSH와의 협약을 통해 연구기금 마련은 노동조합단체에서 맡을 테니 NIOSH는 건설재해예방연구를 하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미국 노동조합단체가 확보한 기금은 세 가지 활동, 즉 NIOSH의 자체적 연구와 대학에서 수행하는 위탁연구에 사용할 뿐 아니라 국립건설센터를 만들어 연구자와 산업정책을 다루는 자 간의 연계 역할 내지 연구결과가 현장에 쉽게 전달돼 예방에 확실하게 활용되도록 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데 사용됐다. 그리고 다음 네 가지 목표 달성에 초점을 뒀다. 첫째, 전 세계적으로 건설재해예방 우수사례를 찾아 미국 실정과 비교하기. 둘째, 미국 건설현장에 어떤 안전보건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조사연구 수행하기. 셋째, 맞춤형 중재(intervention) 연구를 통해 재해위험 감소효과 확인하기. 넷째, 효과를 확인한 연구결과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한 캠페인 벌이기 등이었다.

NIOSH는 건설재해예방연구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 서로 매우 다른 전략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 형태의 리스크인 안전·사고성 손상(사망재해 포함), 인간공학·근골격계장애, 건강유해인자·만성질환을 구분해 다뤘다. 이러한 포괄적 노력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지나서부터라고 한다. 처음 건설재해예방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했던 1990년에 비해 건설근로자의 사망재해율이 2006년에는 16%, 2010년에는 34% 감소했다고 한다.

이렇게 NIOSH를 중심으로 추진된 미국에서의 건설재해예방은 우리에게 몇 가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노동자가 건설재해예방을 자신들의 문제로 여기고 참여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산재예방과 관련해 노사는 남의 일 보듯이 하고 외부전문기관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데 당사자의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알 수가 있다. 둘째, 건설재해예방은 법 또는 기술 어느 한 가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우수사례로부터 배우기, 우리나라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실태 파악하기, 맞춤형 개입연구를 통해 재해예방 감소효과 확인하기, 그 결과를 전국에 확산하기 등의 포괄적인 활동을 추진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그 종합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활동이 국립연구기관인 NIOSH가 중심이 되어 연구 프로젝트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책연구기관으로서의 R2P(research to practice 또는 research to policy) 역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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