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가 지난 30일로 예고했던 총파업을 잠정 연기한다고 밝혔다. 관치금융 철폐를 위한 상당수의 요구들이 관철됐다는 판단에서다. 사진은 지난 10일 서울 다동 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투쟁상황실장 회의. 금융노조

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가 예고했던 30일 총파업은 없었다. 노조는 전날 "총파업을 잠정 연기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달 초 중앙노동위원회가 제시한 올해 임금·단체협상 조정안을 거부한 후 총파업 방침을 거듭 밝혔다. 김문호 위원장은 KB금융의 우리금융 인수설이 한참 피어오를 당시 이해당사자인 KB국민은행지부를 찾아가 “KB금융의 우리금융 인수가 없던 일이 되더라도 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개별 사안의 달성 여부보다는 ‘관치금융 철폐’라는 총파업의 핵심 목표가 달성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이상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달 26일 열린 총파업 진군대회를 통해 이러한 의지는 재확인됐고, 노조는 다음날 그동안 비밀에 부치던 파업장소·일정과 함께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 통보했다. 12년 만의 총파업이 현실화하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총파업이 연기됐다. 주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급조된 농협중앙회 노사 MOU 협상

노조는 지난 27일 오후 예정에 없던 지부대표자 회의를 열었다. 전체 조합원들에게 총파업과 관련한 최종 행동지침이 통보된 후였다. 이날 회의는 표면적으로는 총파업 준비상황을 지부별로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목적도 있었다. KB금융이 우리금융 인수에서 손을 떼면서 파업동력이 약화됐다는 주위의 우려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조 관계자는 “이날 회의에서 각 지부별로 실제 파업에 동원할 수 있는 조합원수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우리금융 민영화 문제가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자 파업에 실제 참여할 인원이 줄어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문호 위원장은 “규모와 상관없이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회의는 해산됐다.

그러던 중 총파업을 준비하던 주말 사이에 충정로 농협중앙회 본점에서 일어난 일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총파업 규모가 축소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농협중앙회 노사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인 것이다. 농협중앙회지부로서는 사실상 자신들이 주축이 된 총파업은 의미가 없고, 사용자 역시 농협중앙회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총파업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 양측 모두 총파업 돌입에 대한 부담감을 공유한 셈이다. 노사는 지난 28~29일 사이 농협중앙회가 농림수산식품부와 맺은 경영개선계획 이행약정서(MOU)와 관련해 집중교섭을 벌였다. 28일 1차 합의안이 마련됐고, 해당 내용이 노조에 통보됐다.

노조 관계자는 “김문호 위원장이 농협중앙회지부만으로도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MOU를 원천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수정합의문을 마련했다”며 “사측이 다급해졌던지 의외로 이를 쉽게 수용하면서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노조는 29일 오후 지부대표자 회의를 다시 소집했다. 지부대표자들은 농협중앙회의 MOU 무효화를 포함해 KB금융의 우리금융 인수 저지, 산업은행 기업공개 중단 등 임단협을 제외한 주요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보고 만장일치로 파업 연기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파업 연기? 파업 철회?

총파업 전후 일어난 상황에 대한 노조의 공식입장은 ‘파업 연기’다. 사업장별로 걸려 있던 파업목표에 대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만큼 남은 기간 동안 임금·단체협상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이미 산하 대형 조직들의 굵직한 투쟁 목표를 달성한 만큼 "총파업을 불사한 투쟁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어윤대·이팔성·최원병·강만수 등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을 상대로 벌인 투쟁에서 ‘이 정도면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 내부 분위기”라고 전했다.

사실상 파업이 철회됐음에도 노조는 '파업 연기'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임단협 협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는 그동안 총 15차례에 걸쳐 교섭을 벌이는 동안 “사용자들이 입과 귀를 닫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사용자측은 이달 25일 파업 돌입을 눈앞에 두고 벌인 대대표 교섭에서 “파업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면서도 노조 요구안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문호 위원장은 “8월 한 달은 임단협 투쟁에 집중해 비정규직 채용금지와 20만 대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 노동강도 완화 등은 반드시 관철시킬 것”이라며 “금융지주 회장들이 법적인 사용자인 은행장 뒤에 서서 입김을 휘두를 경우 또다시 총력 투쟁의 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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