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는 지난 4월30일 창립 20주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2012년 총·대선 국면 산별노조운동 점검 좌담회'에 이어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를 주제로 연중 캠페인을 진행한다. 캠페인에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가 함께한다. 연석회의에는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연중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연속기고에서 한국 노사관계 개혁을 위한 산별노조운동 전면화와 초기업 노사관계로의 재편을 제안한다.

연속기고는 매주 월요일 게재되며, 산별운동에 관심 있는 현장 노사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연속기고가 마무리되면 책자로 발간한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산별운동 진단과 제도화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도 준비하고 있다.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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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전 금속노조
정책국장

98년 외환위기 국면에서 속절없는 양보교섭과 후퇴를 강요당했던 노동조합들은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양 방향으로 대중적 역량을 모으기 시작했다. 금속노조는 98년 말부터 시작해 2년여의 논의를 거쳐 3만여명으로 출발했다. 당시 금속산업연맹 18만 조합원의 15%밖에 안 되는 규모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소규모 노조는 많은 일을 해냈다. 2003년 산별중앙교섭을 성사시켰고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협약 △주 40시간제 도입 △산업별 최저임금의 도입 등 상징적이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노조의 보호와 실질적인 협약 체결에 노력을 기울였다. 조직적으로는 조합비의 집중을 통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장기 투쟁조직과 해고자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수 있었다. 기업별노조 체제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극히 일부의 참여만 이뤄졌을 사안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고, 확장된 것은 기업별노조나 조합원의 일시적 호의를 집단적으로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지원하는 쪽의 사정에 따라 들쭉날쭉했던 것들이 상시적이고 안정된 형태로 진행되게 됐다. 금속노조 내의 사업장 간 연대가 제도화된 것이다. 한국식이든, 유럽식이든 조직 내 연대 실현을 위한 제도의 확립 측면에서는 산별노조 전환 자체가 성과였다.

두 번째는 교섭 영역에서의 연대를 들 수 있다. 형식적이고 협소하며 적용대상이 적다는 비판이 있지만 비정규직 문제·최저임금 등을 교섭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산별노조의 역량이 취약하고 파괴력이 작아서 그렇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모든 산별연맹이나 산별노조에서 이처럼 사업장 영역을 뛰어넘는 제도적 영역의 의제들을 교섭에서 다루기 시작하면 이는 곧 총연맹이 총자본과 협상력을 겨루는 제도의 영역으로 이전한다. 지금은 조직이 분산돼 있고 편차가 커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교섭에서는 상징적인 수준으로, 제도영역에서는 관심 밖의 일 혹은 아직은 다루기 쉽지 않은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 실정이다.

지금 산별노조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는 것은 두 번째 영역이다. 산별노조가 열심히 교섭을 해도 어려운 국면은 계속된다. 노조 내 조합원 사이의 편차는 물론 조합원과 비조합원, 특히 비정규직이나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영역에서는 걸음마도 떼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내 조합원 10만을 차지하는 완성차가 산별중앙교섭에 참가하지 않고 있으며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른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조합원의 실리적 경향 강화·현장조직의 분열·금속노조의 전략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산별노조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조직적 연대는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상호간의 이해관계에서 서로 양보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해 더 큰 파이를 만들자는 수준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 이해관계를 직접적인 성과로 만들고자 하는 노조의 교섭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의 예를 들어보자. 원·하청 불공정 거래 과정에서의 계약 자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공정하다는 혐의를 피할 수단이 너무 많다. 원청 밑에 줄줄이 놓여 있는 하청기업들 사이의 공정함을 무슨 수로 보장할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똑같은 문제로 현대-기아자동차의 성과급 문제가 있다. 현대-기아차의 성과는 수많은 부품회사의 경쟁력과 기업 울타리 안에 다른 작업복을 입고 들어와 있는 비정규직들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때로는 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임금을 인상하기도 하고 성과급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앞에서 본 것처럼 제도화됐다기보다는 현대자동차 집행부의 성향과 의지, 회사의 입장, 비정규직(노조) 간 역학관계나 주변 여건 등에 따라 그때그때 내용과 방식이 달라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산별중앙교섭에 완성차를 참가시키기 위해 임금인상안을 요구안에 포함시켜 다뤄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금속노조 내부의 큰 임금격차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현재의 산별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답답함을 주면서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노조가 가장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산별교섭을 못하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이 어려운 이유는 경제적 조건의 차이를 경제적 교섭만으로 풀기 어렵다는 데 오히려 큰 딜레마가 존재한다. 기업별노조 체제에서 쌓였던 관행이 외환위기 국면을 거치면서 연대투쟁으로 극복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했다. 여기에 조합원의 단기적 경제주의의 심화, 현장조직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활동가들의 대중 추수주의적 경제주의가 복합되면서 소위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과 중소·영세사업장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라는 구분이 깊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산별노조의 미래는 암울한 것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유럽에서 친노동자 정당과 산별노조·사회복지제도가 확립된 배경에는 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한 광범위한 노동자계급의 연대가 놓여 있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의 경우 분단으로 인한 반공주의와 뿌리 깊은 기업별노조주의 등으로 인해 산별노조가 발전하기엔 척박한 조건에 있었다. 그럼에도 산별노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87년부터 시작된 광범위한 연대투쟁의 경험에 기댄 측면이 많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동조합 역사에서는 이념적 연대성에 기반한 조직의 건설과 다양한 복지제도의 설계가 아닌, 조직의 건설을 통한 이념적 연대의 확산과 다양한 복지제도의 건설이라는 과정을 설계할 수 있지는 않을까.

다만 여기서 현재 산별노조가 놓인 여러 경제적 측면의 제약요인들, 특히 기업규모에 따른 격차 혹은 원·하청 관계에 따른 격차, 정규-비정규직간 격차는 교섭만으로는 풀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정치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투쟁으로 확보한 전임자가 법·제도의 변화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정치가 지닌 괴력이자 매력이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실현시키는 단기적 수단이 교섭이라면 정치는 아예 그 수단을 제도화하는 장치인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통한 제도화를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의식과 수준 높은 연대의 전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희망하고 바람직하다는 것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교육과 선전을 해야 하고 기업별 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경험과 관행이 축적돼야 가능하다. 이러한 교육선전과 경험을 누가 축적할 것인가. 기업을 뛰어넘는 의식과 활동은 결국 기업을 뛰어넘는 형식에 의해 뒷받침될 수밖에 없다. 기업을 뛰어넘는 형식은 아무리 둘러봐도 산별노조 말고는 보이지 않는다. 산별노조에 대한 한계가 아무리 제기돼도, 지난 200여년간 노동자들이 취한 여러 조직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조직이 산별노조다.

2000년 창당해 2004년 국회입성을 이뤘던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사실 기업별노조 체제의 한계와 함께 단기의 경제이익을 위한 교섭만으로는 안 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도 하다. 사실상 그 중심에는 산별노조의 경험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산별노조는 여전히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무기다.

산별노조들은 기업별노조 체제에서 보였던 여러 한계들을 산별노조를 통해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물론 그렇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것도 많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못했다가 아니라 무엇을 못했고, 왜 못했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노조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세운 계획이 무엇인가, 그 계획은 타당했는가, 조직은 계획을 잘 수행했는가의 측면에서 지난 활동을 평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무슨무슨 식의 산별노조여서, 아니면 무슨무슨 식의 산별노조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조직이 움직였던 방식(결국 조직을 그렇게 움직이도록 했던 사람)이 문제였던 것이다. 너무 조급했거나(지역지부 재편) 파격적이지 못했거나(산별교섭준비위원회의 폐기) 결과적으로 전략적 사고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산별노조가 잘못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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