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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내몰리는 전기원 노동자] 정부 산재예방 대책 부실한데 … 한전은 민간업체 위탁 고수노동계 "안전공법 도입하고, 발주처인 기재부와 한전이 산재 책임져야"

전기 선로 개설·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전기원 노동자들이 불법다단계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기원 서씨는 왜 '미등록 직원'이 됐나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전선연결작업을 하던 서아무개(43)씨가 감전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다리차 끝에 달린 작업용 절연바구니가 불에 타면서 서씨는 큰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 호송된 그는 결국 두 다리와 손가락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사고에 대해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정전 공사를 하려면 일정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서씨는) 미등록된 직원"이라고 말했다. 사고 책임을 서씨에게 떠넘긴 것이다.

공사 관계자의 해명을 접한 건설노조 관계자들은 한국전력으로 달려갔다. 한전 관계자의 설명이 틀렸기 때문이다. 노조에 따르면 서씨는 활선작업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기능공이다. 다만 사고 당시는 A회사에서 사직을 하고 B회사 현장에서 일용노동자로 근무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씨의 자격증은 A회사에 남겨진 상태였다.

한전과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는 일정 기준의 무정전 전공과 배전 전공 노동자를 확보해야 한다. 현장에서는 이들 노동자 명단을 '편조인원'이라고 부른다. 서씨의 경우 사고현장에서 일용근로를 하면서 편조에 속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한전 관계자는 서씨를 '미등록 직원'이라고 불렀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산재 유발

배전업체가 할당된 보유인원을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데, 이를 준수하지 않고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배전업체만 탓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전기 선로 개·보수 현장은 '편조' 노동자와 '무편조' 노동자가 한데 섞여 일하는 것이 관례화된 지 오래다.

전기 선로 개·보수 현장도 일반 건설현장과 마찬가지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다단계 구조의 최하층에 있는 배전업체는 적은 돈을 받고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상시인력을 고용하기보다는 경험이 있는 일용노동자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이근도 건설노조 서울지부 전기분과장은 "4명이 한 조를 이뤄 현장에 나갈 경우 그중 2명은 무편조 노동자라고 보면 틀림없다"고 말했다. 무편조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산업재해 발생위험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분과장은 "현장 노동자들은 배전업체로부터 빠른 시간에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며 "비용을 줄이려는 배전업체 때문에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불안한 산업구조가 고용불안 유발

무편조 상태의 전기원 노동자들이 급증하는 것은 한전의 정책에 기인한다. 한전은 2년마다 배전협력업체 선정기준인 추정도급액을 상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협력회사의 상시보유 노동자 인력은 늘리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한전과의 거래기준에 미달한 소규모 배전업체들은 2년마다 퇴출을 당한다. 해당 업체의 상시 노동자들은 길바닥으로 나앉을 수밖에 없다. 김인호 건설노조 전기분과장은 "한전이 2년에 한 번씩 협력업체 기준을 올리면서 보유인력은 오히려 축소시켜 나가고 있다"며 "소규모 업체는 문을 닫고 전기원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다단계 구조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전으로부터 직접 발주를 받지 못하는 소규모 업체가 다단계 최하층을 이루게 되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무편조로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 전기원 노동자들은 자신의 자격증을 배전업체에 대여해 주기도 한다. 김 분과장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현장 경험은 없는 직원, 자격증을 대여해 줬지만 해당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는 직원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한전은 올해도 추정도급액을 상향시킬 계획이다. 이달 4일 한전 본사에서 열린 '전기공사 분야 협력기업 CEO 간담회'에 참가한 김중겸 한전 사장은 "연간 추정도급액이 너무 적을 경우 시공업체들의 난립으로 인해 기업이 실제로 가져가는 금액이 적어진다"며 "규모를 대형화해서 업체들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업체를 견실화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전업체의 대형화를 유인하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배전업체 상시보유 인력 증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2만2천900볼트, 치명적 위험과 함께하는 전기원 노동자

전기원 노동자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봇대 위에서 일한다. 요즘에는 대부분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작업을 한다. 김인호 분과장은 "요즘 전봇대에는 변압기는 물론이고 인터넷선 등 온갖 전선들이 뒤엉켜 있다"며 "사다리차가 비집고 올라가 다른 전선을 잘못 건드리거나, 2만2천900볼트의 고전압을 다루다 작은 실수만 해도 노동자는 치명적인 재해를 당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이미경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0년 이후 한국전력 배전현장 연도별 산재처리현황'에 따르면 전기원 노동자의 산재는 큰 증감 없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2008년에는 419명이 산재를 당했고, 이 중 15명이 사망했다. 2009년에는 447명 중 18명이, 2010년에는 434명 중 18명이 산재로 숨졌다.

건설노조는 노동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산재 건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산재가 발생하면 노동부에 보고가 되고 한전은 책임 추궁을 받게 된다"며 "때문에 배전업체가 산재발생을 숨기면 한전이 해당업체의 뒤를 봐주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담당부처는 온데간데없고 민간업체 깃발만

전기원 노동자에 대한 산재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산재예방 활동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전기 관련 공사를 실제 발주하고 담당하는 정부부처는 기획재정부다. 그런데 기재부는 "산업 현장의 안전관리감독은 노동부에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산재보상 처리 등 실제 업무는 노동부에서 진행한다"며 "발주를 담당하는 기재부가 산업현장까지 관리·감독하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부의 견해는 다르다. 노동부 관계자는 "전기 관련 산업은 전문적인 분야라 예방분야에 있어 노동부가 관여할 여지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산재가 발생했을 경우 후속조치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두 부처가 서로 감독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현장의 안전관리감독은 사실상 민간업체가 담당하고 있다. 한전은 매년 경쟁입찰에 따른 적격심사 낙찰제를 통해 배전공사 전문 감리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전문 감리업체는 8천만원(2011년에는 5천만원) 이상의 현장에 투입돼 안전문제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시행한다. 그 이하 공사금액의 경우 한전이 직접 관리하도록 돼 있다. 노조는 이에 대해 "소규모 현장에 대한 한전의 관리·감독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협력회사의 기능인력이나 장비보유 유무 등 기본적인 상황을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1년에 두 번씩 현장실사를 통해 협력업체를 점검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안전사고가 일어날 경우 협력업체에 벌점을 부과해 입찰에 제한을 두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만 모든 공사현장을 찾아가 관리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편조인원에 대해서도 작업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대조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한전 관계자는 "근로자의 자격증 여부를 현장에서 바로 확인하는 시스템 도입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 중"이라며 "한전에서 직접 할지, 감리업체에서 할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선 현장의 배전업체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한전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전기 배선 개·보수 현장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감리업체에 대한 일선의 평가는 어떨까. 김인호 분과장은 "한전 퇴직자들이 감리업체에 많이 있다 보니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며 "한전이 감리업체에 대한 총괄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업체도 한전의 눈치를 별로 보지 않고 일을 대충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안전공법 도입하고 발주처가 책임져라"

산업안전 관련 단체와 노동계는 전기원 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한 개선과제를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작업공법과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 전기 배선 개·보수 작업은 대부분 작업구간의 전기를 살려 두는 활선공법 방식으로 이뤄진다. 해당 공법은 한전이 지난 2005년 5월 '직접송전공법'을 도입해 일선 현장에 시행하도록 한 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전에는 작업구간을 사선상태(무전압 상태)로 만든 뒤 작업을 했다. 당시 노조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채택하지 않는 직접 활선작업을 확대시키는 신공법이 도입됐다"며 "노동자의 안전은 무시한 채 오로지 비용절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제도 시행을 막지는 못했다.

활선공법은 전기원 노동자들이 2만2천900볼트의 전기를 직접 다룬다는 점에서 위험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노조는 '정전작업'과 '케이블 공법'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전작업은 작업구간의 전력을 차단하는 방법이고, 케이블 공법은 전력유지를 위한 우회 케이블을 설치한 뒤 작업을 시행하는 것이다. 정전작업에서는 작업구간의 전력이 일체 차단되고, 케이블 공법에서는 우회 케이블 설치로 인한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노조는 "사람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비용보다 우선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기공사 현장의 산재예방을 위한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근 한전의 작업안전규칙 중 일부를 산업안전보건법에 삽입한 것은 나름의 진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재부와 한전이 관리·감독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기본적으로 사고현장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은 발주처가 져야 한다"며 "전기산업에 대한 총괄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기재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계는 이와 함께 당면 현안으로 떠오른 한전의 추정도급액 상향에 따른 소규모업체 퇴출과 상시운영인원 축소를 우려하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한전은 1년에 두 번 정도만 배전업체 인원을 점검한다"며 "서류상으로 인원을 맞춰 놓고 실제로는 고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상시보유인원마저 줄어든다면 작업인원이 부족해 산재 발생위험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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