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재벌개혁 의제 중 하나는 부당내부거래 규제다. 불법상속을 위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비자금 조성을 위한 중간거래 계열사 끼워넣기, 돈세탁을 위한 해외 계열사와의 거래 등은 많이 알려져 있는 바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예는 현대차그룹 물류회사인 글로비스다. 글로비스는 매출의 90%인 6조6천억원의 매출을 계열사를 통해 올리고 있다. 2001년 자본금 25억원으로 설립돼 계열사 물류를 독점하며 성장했다. 물론 글로비스가 정몽구 회장의 불법 상속을 위한 기업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비자금 조성용 계열사 끼워넣기의 예는 얼마 전 공정거래위에 걸린 롯데기공이다. 현금입출입기기 서비스업체인 롯데피에스넷이 중소제조업체에서 직접 납품받던 ATM기기를 롯데기공을 중간 구매자로 끼워넣어 간접 납품받으면서 납품가를 조작해 비자금을 만들었다. 롯데기공은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던 계열사로 이 과정에서 40억원을 챙겼다. 대우로지스틱스는 해외계열사를 통한 돈 세탁의 예를 보여 준다. 대우로지스틱스는 2007년부터 싱가포르에 페이퍼컴퍼니(실체 없이 등록만 돼 있는 회사)를 세우고 이 페이퍼컴퍼니와 거래를 하며 2천억원가량의 돈을 비자금으로 조성한 이후 합법적 거래인 것처럼 만들어 국내로 반입했다. 최근 관세청에 이 같은 사실이 적발돼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그런데 이런 부당내부거래는 재벌들만 하는 일일까. 아니다. 언론의 관심을 받지 않아서 그렇지 중소기업들 상당수도 재벌들과 비슷한 부당거래를 일상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금속노조 지역지부 임단협에서 큰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반월시화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SJM의 예를 보자. SJM은 에스제이엠홀딩스를 지주회사로 두고 있으며, 지주회사는 SJM을 포함해 1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이 그룹에서 이상한 것은 지주회사로 모이는 돈의 대부분이 주력사인 SJM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티엔엔이라는 수출입전문 계열사와 제조업으로 등록돼 있지만 매출액이 0인 한국칼소닉이라는 계열사가 지주회사의 수입을 책임지고 있다. 이 둘이 지주회사에 배당한 액수만 70억원이 넘는다. 그리고 티엔엔의 매출 중 절반은 SJM과의 내부거래이며, 임직원이 4명으로 에스제이엠 사무실 구석에 책상만 있는 한국칼소닉은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다. SJM그룹의 지주회사가 주력 제조업체가 아니라 비상장회사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구조다.

2010년 직장폐쇄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구미 반도체업체 KEC의 경우 더욱 노골적이었다. 2009년부터 그룹 재편에 나선 KEC는 느닷없이 핵심계열사 중 하나였던 리드프레임 업체를 정체불명의 홍콩 페이퍼컴퍼니 계열사로 바꾸고, 일본에서 수입하던 부품을 홍콩 페이퍼컴퍼니 계열사인 티에스디라는 회사를 통해 간접 구매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KEC에 부품을 공급하던 도매업체도 홍콩 페이퍼컴퍼니로 지배주주를 바꿨다. KEC는 매년 적자를 봤지만 KEC와 큰 거래를 하던 나머지 회사들은 이익을 봤다. 물론 이들 유령기업의 계열사 모두는 KEC의 회장이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다. 전형적으로 계열분리와 내부거래를 통해 회사 돈을 오너가 챙기는 방법이다.

원청의 지원을 받아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하는 금속노조 지회를 탄압했던 유성기업도 그룹 차원의 내부거래로 회장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돈을 챙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사례다. 상장사인 유성기업은 유성기업그룹의 중심기업이지만 유성기업의 회장은 돈을 비상장기업에서 벌어들였다. 유성기업은 매출의 절반 이상이 내부거래다. 매출의 58%가 Y&T파워텍·신화정밀·동성금속·유성피엠공업 등 비상장 계열사가 만든 제품을 유성기업이 현대차 등에 납품해 얻는 상품 매출이었다. 지난해 초까지 이 과정에서 유성기업은 막대한 손실을, 나머지 계열사들은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유성기업은 50억원 가까이 적자를 봤고, 유성기업을 통해 납품을 하는 나머지 계열사는 200억원 가까운 흑자를 기록했다.

SJM·KEC·유성기업의 사례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특징을 보여 준다. 하나는 그룹의 오너가 내부거래를 통해 외부 감시가 덜한 비상장사에서 이득을 챙기는 구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거래가 커지는 국면에서 금속노조를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SJM은 2010년 하반기에 지주회사를 출범시키고 계열사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올해부터 예년과 달리 노조에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KEC는 2009년 홍콩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그룹을 둘로 분리한 이후 2010년 타임오프를 빌미로 기습적으로 용역깡패 투입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유성기업 역시 그룹 대부분의 수익을 2010년부터 계열사로 옮긴 이후 노조의 주간연속 2교대제 요구를 빌미로 현대차의 지원까지 받으며 노조를 탄압했다.

사측이 내부거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노조탄압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부거래를 통해 오너에게만 유리한 수입구조를 갖추는 데 노조가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매년 임단협을 통해 회사의 경영상황을 살피며, 현장투쟁 과정에서 다양한 내부거래 비리를 잡아내는 노동조합은 회사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다.

부당내부거래는 비단 재벌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재벌개혁이 사회적 의제가 된 김에 중소기업의 내부거래 역시 규제책을 찾아야 한다. 특히 금속노조가 많은 힘을 쏟아야 하는 부분이다. 중대형 부품사들이 많은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이런 부당내부거래가 몇 년 사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봤듯이 부당내부거래 증가는 노조탄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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