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20일은 금속노조 총파업이었다. 금속노조 사상 가장 많이 참가했다는 13일의 금요일보다도 많은 조합원이 파업을 했다. 조합원이라면 거의 모두가 파업에 참가해서 다시 사상 최대의 날을 기록했단다. 노동조합이 이렇게 파업을 하고 있다면 “나 잘나가”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면 이 노조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제 세력도 그 운동방식도 “잘나간다. 문제없다” 해야겠는데 그렇지 않다. 금속노조는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정파들의 본산이다. 지금 노동운동의 3대 정파니 5대 정파니 하는 것도 금속노조로 전환되기 전인 금속산업연맹에서 출발했다. 98년 2월 금속산업연맹의 임원선거에서 이른바 중앙파·현장파·국민파 등으로 정파조직이 형성됐고, 그 뒤 민주노총까지 확산돼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정파가 문제되고 있다. 사상 최대였다는 금속노조 총파업의 날들 사이, 18일 (가칭)노동포럼준비위원회가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주최한 ‘노동운동과 정파,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정파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발표하고 토론했다. 총파업의 날에 정파가 문제다. 도대체 어쩌다 정파가 문제라고 하는 것일까. 통합진보당 사태로 연합이니 정파니 시끄럽더니 이제 노동운동 내 정파조차도 문제라는 것일까.

2. 정파가 문제라는데 도대체 정파가 무엇이겠는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형성된 세력을 말한다. 그러니 노동운동에 정파가 없다면 그건 노동운동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전개해 나가는 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운동에서 정파가 존재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노동운동의 방법을 둘러싸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제 세력이 나뉘는 경우, 둘째 정치적 입장이 다른 제 세력이 노동운동을 자신의 이해에 따라 활용하는 경우다.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를 사업장에서 뿐만 아니라 한 나라에서 확보하는 것을 자신의 길로 한다. 전자는 정치적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후자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노동운동에서는 그 정치적 입장이 다른 제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정파의 존재 자체가 노동운동의 부정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정파의 존재야말로 노동운동의 힘일 수 있다.
3.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과 당을 이야기 하다 보면 언제나 정파가 튀어나온다. 정파로 노조와 당의 활동을 바라보게 된다. 정파가 운동에서 자리를 잡은 뒤 어제도 오늘도 줄곧 그래왔다. 운동이 정파로 세를 갈라 그 단위로 논의해서 방향을 잡고 사업하고 평가하다 보니 아무리해도 달리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빼놓고 노동운동을 이야길 하면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만다. 그래서 정파로 운동을 이야길 하다보면 어느새 운동은 보이지 않고 정파의 내부정치만 보인다. 운동을 위한 정파인데도 정파는 운동을 잡아 먹어 버린다. 노동운동을 위한 정파투쟁이 아니라 정파운동을 위한 노동운동이 되고 만다. 도대체 어디서 뒤틀려 버린 것일까.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정파가 존재하는 것, 그것이 문제라고 할 수 없다. 뭐 당이라고 다르겠는가.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노동자의 세상을 향해 가는 노동운동에서 그 진로 또는 방법을 두고서 입장이 다른 제 세력으로 나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그랬다면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연구원장은 토론회에서 “정파조직이 활동가 재생산과 노동운동의 이념성을 만들어 내는 기제, 현장에서 상층간부에 대한 감시기능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만 평가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운동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운동에서 어떻게 사업하고 투쟁할 것이냐를 두고서 죽기살기로 치열하게 정파 간에 대립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정파는 노조운동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제 세력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노조운동에서 어떻게 달리 사업을 하고 투쟁을 할 것이냐를 두고서 제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대느라 노동운동에 “과도한 대립과 갈등”을 가져왔다 해도 그것이 아직 정파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노동운동과 정파, 이대로 좋은가’라고 토론한다고 해도 나는 (토론회 제목이) 그럴 수 있겠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럴까. 그렇다면 그건 그저 ‘제대로 된 정파가 되도록 하는 것’이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과 정파에 관한 토론의 결론이 되고 만다. 이날 김태현 원장은 “권력지향적 분파나 파벌이 아닌 이념적 지향과 전략을 갖춘 제대로 된 정파가 돼야 한다”며 “기존 정파 성원들도 자신의 정파의 문제점과 한계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파가 조합원을 중심에 두고 대안·정책 중심으로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 조합원이 평가하고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정파가 건강한 의견제시 그룹이나 정치적 노선과 견해에 따른 그룹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을 해결방안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정파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노조운동에서 사업과 투쟁을 두고서가 아니라, 노조운동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나아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당과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이합집산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면 그건 더 이상 정파라고 부를 수가 없다.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정파가 이런 상태라면 ‘노동운동과 정파,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은 그 진단과 해답이 모두 잘못된 것이다.

4. 만약 정파가 노동운동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정파는 노동운동을 다른 정파와 다르게 사업하고 결과를 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파운동은 그렇지 못했다. 금속노조에서 또는 사업장에서 어떤 정파가 다른 정파집행부를 교체하고서 하는 사업·투쟁이 특별히 그 정파여서 다른 무엇을 쟁취했다는 걸 보지 못했다. 어용과 민주는 다른 게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민주노조를 세우겠다고 제 세력이 함께 투쟁했다. 그런데 지금 노조운동에서 정파라는 것은 기껏해야 사업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있는 정도다. 그것도 같은 정파여서 현장집행부와 원만하게 사업한다는 거 빼면 아주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차피 어느 정파이든 지금 노조운동이 쟁취해야할 요구에서는 차이가 없다. 단지 그걸 올해 요구해서 투쟁할 거냐, 이번에 합의할 거냐 아니냐로 사업방향이 좀 달랐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그 정파가 집행부를 장악한 사업장노조들 사이에서 보여 주고 있는 차이에 비해서 큰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은 크게 봐 줘도 사업방식의 사소한 차이에서 비롯된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이처럼 정파가 운동에서 별 차이가 없는데도 운동에서 정파로 세를 가르고 활동한다면 바로 그것이 운동을 위한 정파가 아니라 정파를 위한 운동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에서 정파가 존재하는 두 가지 경우 중 둘째, 즉 정치적 입장이 다른 제 세력이 노동운동을 자신의 이해에 따라 활용하는 경우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라면 여기에 아무리 “정파가 이대로 좋은가. 정파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토론해봐야 소용없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해서 정리되거나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석호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이 “노동운동이 망하게 생겼는데 (정파들끼리)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부터도 나름대로 정파활동을 하면서 대중운동을 발전시켜 보려고 했지만 돌아보니 편협하고 배타적으로 바뀐 것 같다”며 “정파 1세대들이 공개적인 자기성찰운동을 벌여 보자”고 제안해 봐야 소용없다.

이 경우라면 노동운동에서의 정파운동에 대한 이 나라 노동자의 선택만 남게 된다. 노동운동을 정파운동의 상위에 놓을 것이냐, 아니면 노동운동의 상위에 정파운동을 놓을 것이냐. 이 문제는 단순히 노동운동에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정파운동의 폐해를 말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아직 제대로 제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파운동의 하위범주로서 그 정파의 정치적 입장을 노동운동에서 관철하기 위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노동운동에서 정파가 문제라고 자기성찰을 할 것이겠는가. 오직 노동운동을 뛰어넘는 그 정파의 정치적 입장의 옳고 그름만이 문제될 뿐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입장의 옳고 그름도 오직 권력의 장악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건 평가하고 말고 할 문제도 아니다. 분명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정파는 문제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을 시작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운동의 정파’가 아니라 ‘정파의 노동운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파운동이 지금 노동운동을 잡아먹고 있다. 노동운동에서 당면한 사업과 투쟁의 목표가 다르지 않은데도 정파로 세를 갈라 노조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활동한다면, 하나로 사업하고 투쟁할 것을 쪼개서 자본 앞에서 스스로 분열돼서 운동을 약화시키는 짓이다. 노동운동을 위해서 분명히 극복돼야 할 정파운동이다. 이 나라에서 운동은 노동운동이고 뭐고 조직의 형과 동생·동기·선배와 후배가 지배한다. 그러나 그것이 운동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그걸 노동운동의 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운동을 외면하고서 권력으로 향하는 정파의 길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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