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노욕이 지나치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그렇다. 3년 재임 기간 중 인권 없는 인권위를 만들어 간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청와대는 연임시키기로 결정했다. 현 위원장은 인권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권위 직원들뿐 아니라 장애인·새터민·용산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까지 자행한 인물이다. 현 위원장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활동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력을 비호하기 위해 활동했다. 게다가 초임에서도 현 후보자는 논문 표절과 부동산 투기 및 자녀 병역비리 의혹으로 고위공직자의 자질을 의심받았다.

전국공무원노조 인권위지부 준비위원회에 따르면 인권위원회 직원 1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86명)의 89.5%가 “현 위원장 취임 이후 한국의 인권상황이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인권위원의 임명 등 인권위 독립성에 대해 우려를 반복해서 표명해 왔으며, 현 위원장 연임에 대해서도 “시민사회 및 관련 이해관계자들과의 폭넓은 대화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 활동에 대해서도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진압이나 경찰 수사방법,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상대로 한 검찰 및 경찰 수사 논란, 2010년 5월 공식 방한했던 프랑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에 대한 당국의 사찰 등 주요 인권사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단호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고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청문보고서 채택을 두고도 민주통합당은 ‘부적격’ 의견을 담은 보고서 채택을 요구했고, 새누리당조차 ‘각 당의 입장을 반영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자’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간접적으로 연임에 반대했다. 결국 양당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국회의 동의는 불가능하게 됐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인권위원장 임명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통령 전권사항이라는 점을 악용해 연임 강행 카드를 꺼내들었다.

머지않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이 국내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모두가 반대하고 국제적으로도 강한 비판을 받는 부적격자를 굳이 연임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여당의 재집권 기회를 위협하면서까지 자신의 마지막 권력을 지키려는 것은 단순히 노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모든 기회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지켜야 할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은 모르는 것도 많고 덮을 것도 많은 정권 말기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청와대가 늘어놓은 연임의 변은 “인권을 대변·보호하는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정착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현 위원장이) 연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본연의 사명’이라는 말의 진실은 '인권을 대변·보호하는 것'이라는 수사적 표현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모르는 것을 묻지 말고 덮을 것을 덮으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따르는 것’이다. 도덕성뿐만 아니라 인권 개념조차 없는 현병철 위원장은 이러한 역할에 가장 충실한 인물로 발탁된 것이다. 그는 단연코 지난 3년 동안의 ‘공적’을 통해 적임자로 낙점됐다.

국민들은 벼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벼르고 벼른 마음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에서는 이번 인권위원장 연임사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권을 침해하는 인권위와 국민을 우습게 아는 대통령의 독단을 또다시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제 인권위원장 연임 결정권은 대통령에게 넘어갔지만, 인권을 침해한 인권위에 대한 책임 추궁과 대통령 선출의 결정권은 국민에게 넘어갔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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