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한국의 의료보험은 77년 7월에 시작됐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77년 첫해 320만명을 시작으로 지난해 4천930만명으로 100배 이상 늘었다. 전 인구의 96.8%가 가입해 사실상 전 국민 보험이 됐다.

건강보험은 혜택이 늘어난 만큼 재정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건강보험 장기재정 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금은 올해 5조4천억원에서 오는 2060년에는 86조3천억원으로 15배나 급증한다.(동아일보 19일치 12면 톱기사)

동아일보는 올해 직장가입자의 보험료가 5.8%에서 2060년이면 13%로 2배 이상 오른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올해 한 가구당 연간 건강보험 평균납부액은 206만원인 데 반해 2060년엔 2천231만원(회사 부담액 포함)으로 10배 이상 오른다.

주류 언론은 늘 이런 식으로 공공 의료보험인 국민건강보험에 위기감을 불어넣는다. 동아일보는 고령화 사회의 급속한 진행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대로 갈 경우 잘못하면 재정파탄의 위험성도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구조와 체계가 고령화 사회를 불러온 건 아닌데도 건강보험에 그 책임이 있는 것처럼 서술하는 건 비단 동아일보뿐만이 아니다. 그래도 동아일보의 이번 기사는 다소 완화된 표현을 사용했다. 보수언론은 건강보험을 다룰 때마다 ‘파탄’·‘붕괴’·‘세금 폭탄’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건강보험이 곧 망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민간 의료보험과 비교하면 어떨까. 지난해 국민 한 가구당 민간 의료보험비는 240만원으로 건강보험료보다 더 많다. 전 국민의 56%인 2천500만명이 민간 암보험에 가입해 있다.

민간 의료보험은 매달 1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4천원 정도를 돌려받는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은 직장 가입자가 월 1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1만6천800원을 돌려받는다. 이때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 1만원 가운데 순수한 본인 부담금은 5천원 수준에 불과하다.

또 직장가입자는 본인 한 명만 가입해도 그 가족까지 모두 혜택을 본다. 그러나 민간 의료보험은 가입자 본인만 혜택을 볼 뿐이다.

로또복권 1만원어치를 사면 확률상 예상되는 수익은 5천원이다. 1만원 내고 4천원을 받는 민간 의료보험은 로또복권보다도 못하다. 카지노 슬롯머신도 전체 배당금이 최소 75%가 되도록 법으로 정해 놨다. 민간 암보험은 카지노 슬롯머신보다 못하다.

보수언론은 이런 내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보수언론이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의 위기조장 기사로 노리는 꼼수는 민간 의료보험 가입확대다. 재벌 보험사들이 보수언론의 유력한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알권리와 사실보도 어느 것 하나도 지키지 않는 왜곡보도다. 이들의 편한 친구인 보수 정치권도 건강보험 위기 조장에 몰두한다.

새누리당 등 보수 정치권은 무상의료를 실시하면 최소 30조~54조원이 더 들기 때문에 국민에겐 엄청난 준조세 폭탄이라고 주장한다. 보수 정치권이 노리는 것도 민간 의료보험의 확대다. MB정권 5년 내내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 의료보험 확대에 매진해 온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도, 우리 언론은 현 정권의 이 같은 정책적 행보가 전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함이라고 포장해 왔다.

2008년 우리 국민은 15조5천억원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26조5천억원의 혜택을 받아 갔다. 1만원 내고 달랑 4천원만 받아 가는 민간 의료보험과 국민건강보험의 승부는 이미 끝났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민간 의료보험의 신상품 소개에 혈안이다. 대신 우리 언론은 건강보험에 대해선 늘 색안경을 끼고 파탄 나기만 바란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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