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필)

약 1년3개월 전 필자는 본 지면을 빌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조합이 소멸된 뒤 남아 있던 조합원들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글에서 신규노조의 취약성을 예로 들었다면 오늘은 기존의 노동조합, 나름대로의 조직력을 자랑하는 노동조합들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또 얼마나 상시적인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로 뽑을 수 있는 대기업의 한 계열사 A노조 이야기다. 현재 이 그룹의 계열사 중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은 A노조 단 한 곳뿐이다. 그룹 입장에서 A노조를 볼 때 목에 걸린 가시 같은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해당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됐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해당 사업장에서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탈퇴강요 등이 만연해 있었다. 노동조합의 노력에도 조직률은 서서히 떨어져 가고 있었지만 회사가 바라는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적법하게 처리됐던 지부 대의원대회의 안건을 무효화하겠다며 전격적으로 대의원들을 동원했다. 노동조합의 규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채 지부장 직무정지안을 통과시켰다.

회사는 한발 더 나아갔다. 지부장의 직무를 정지시킨 대의원들은 소위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기구를 구성했다. 이 기구는 지부 규약을 위반해 만든 임의단체임이 누가 보더라도 명백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러한 임의단체와 덜컥 단체교섭을 하더니 심지어 단체협약을 체결해 버렸다.

비상대책위원회와 회사의 교섭과정을 살펴보면 실소가 터져 나온다. 단체교섭에서 제시된 회사 안에 대해 비상대책위원회는 “회사측 안이 부당하고 회사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성명서 발표 후 4일 만에 전격적으로 노사 잠정합의가 나왔다. 타결안에는 소위 ‘무분규선언’에 대한 보상금 100만원이 포함됐다.

상견례부터 타결까지 불과 1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결국 A노조는 법률분쟁을 통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어느 정도 법률적 우위가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원이 노동자의 편이라고 과연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법률적 쟁송의 결과가 노동조합이 원하는 결과에 부합하게 나올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한단 말인가.

예전 70~80년대에 불조심 예방 포스터에서 흔히 봤던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표어를 기억할 것이다. 민주노조를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 버리겠다는 사용자의 불굴의 의지(?)가 남아 있는 한,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꺼진 부당노동행위’도 다시 보고 돌아보고 또다시 확인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예방할 방법은 과연 없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필자의 눈에는 뾰족한 예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원론적으로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밖에…. 상처 입은 짐승이 주변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듯, 사용자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부당노동행위라는 제도의 근본적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부당노동행위 인정의 어려움, 둘째 솜방망이 처벌로 나뉜다. 특히나 어렵게 입증받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수위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수준이다.

범죄(노조법 제81조 위반)가 인정됐고 이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 실행했음에도 그 처벌수위는 실형은커녕 벌금형도 나오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있자 그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임금체불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자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한 구속수사도 흔해지고 있다. 하지만 부당노동행위로 사용자가 구속됐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사용자들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너무나도 쉽게 부당노동행위를 기획하고 자행하는 것이다.

처벌 강화로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논의는 별개로 치더라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전환돼야 한다. 처벌기준 또한 대폭 강화돼야 한다. 지난해 4월 글에서 필자는 “우리 노사관계는 언제쯤 80년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한탄과 자조 섞인 말로 끝맺음했다. 1년 뒤인 이번 글에서도 같은 이야기로 글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 참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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